고려를 지키려 했던 충신의 아이콘 정몽주, 역성혁명을 통해 새나라를 건국하려 했던 개혁의 아이콘 정도전, 두 천재의 이야기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정몽주 (1338~1392)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고 그 지역의 향리를 세습하고 있는 집안이었습니다. 고려시절 향리직은 그 지역의 유지로 행정을 담당하는 사회적 위치를 갖고 있었고, 정몽주의 고향인 경북지역은 성리학의 메카였습니다. 고려 말 성리학을 처음 들여온 안향이 경북 영주를 중심으로 활동했기 때문이죠.
그 대표로 '목은 이색'을 들 수 있습니다. 이색은 원나라에 유학을 했으며, 원나라에서 과거에 급제한 엘리트 중 엘리트였습니다. 경북 영덕에서 활동했기에 당시 정몽주의 아버지와 친분이 있어, 이색의 밑에서 성리학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정몽주는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여 많은 성리학 해설서를 남겼고, 많은 사람들이 정몽주의 학식에 대해 감탄했다고 합니다. 공민왕시절 전국수석으로 과거에 합격하여 본격적으로 관직을 시작하게 되죠. 정몽주는 여진족 토벌에도 참여했는데, 이때 만난 이가 바로 당시 신흥무인세력인 이성계였습니다.
게다가 정몽주는 명나라사신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여 명나라 홍무제, 주원장에게 굉장한 신임을 받던 인물이었습니다. 어느 날 정몽주가 명나라 사신으로 갈 때 난파사고를 당했는데, 주원장이 반드시 정몽주를 살려내라는 특명까지 내렸다고 하죠.
또한 왜 나라에서도 외교력이 발하는 사건이 있는데, 당시 왜구 때문에 많은 피해를 보던 고려였습니다. 고려에서는 정몽주를 왜 나라의 특사로 보내게 됩니다. 규슈지방의 세력가와 만나 왜구들을 잘 통제할 것을 약속받고, 수백 명의 고려인 포로를 송환하는 공도 세우게 되죠. 이때 일본 외교관들이 정몽주와 대화를 나눠보고 다 같이 감복했다고 합니다. 외교관으로 정몽주는 백점만점에 백점이죠.
1380년에는 이성계와 함께 황산대첩에 참여해서 공을 세우기도 합니다. 이러한 면을 보았을 때 외교, 군사분야에서도 매우 뛰어난 인재였다고 생각이 듭니다.
정도전 (1342~1398)
정도전의 고향은 경북 봉화로 정몽주와 같은 향리집안 출신이었습니다. 정몽주는 유복한 편이었던 반면, 정도전은 엄청 가난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유복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정도전은 경북 봉화 출신이라고 앞에서 언급해 드렸죠. 정몽주와 같은 경북지역이다 보니 자연스레 같은 스승인 목은 이색 밑에서 하륜, 권근 등과 함께 학문을 배우게 됩니다.
정도전은 정몽주보다 4살 아래였으나, 서로가 서로에게 천재라고 하며 친구처럼 지냈다고 전해집니다. 정도전은 공민왕시절 과거를 통해 중앙관직에 진출하게 되죠. 기존 원나라보다 세력이 약해진 북원과, 신흥 강대국인 주원장의 명나라 가운데서 신진사대부들은 기존 원나라 세력을 오랑캐라 칭하고, 명나라에 사대를 요구하게 됩니다. (당시 사대부는 무조건적인 명나라에 사대를 요구)
하지만 기존 이인임, 최영을 필두로 한 권문세족은 원래 친원세력이었기 때문에 북원과의 친교를 원했습니다. 이때 젊은 신진사대부들은 거품을 물고 반대하게 되는데, 이 반대운동을 제일 적극적으로 했던 인물이 바로 정도전이었습니다.
권문세족은 이러한 정도전을 눈엣가시로 생각했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예 정도전을 북원 사신을 접대하라는 지시를 내리죠. 화가 난 정도전은 '내가 북원사신단을 만난다면, 그 자리에서 목을 베어버리겠다'라고 말을 했는데, 당시 문하시중(지금의 국무총리)이었던 이인임은 정도전을 유배 보내기로 합니다.
하지만 당시 좌시중이었던 경복흥이 유배를 철회했으나, 불꽃남자였던 정도전은 스스로 전남 나주행 유배를 떠나게 됩니다. 정도전 이외에 정몽주와 같은 신진사대부들도 북원사신단을 반대하다가 유배가게 되나, 대부분 금방 조정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하지만 권문세족의 눈엣가시인 정도전만은 정치복귀를 못하게 방해하게 되죠. 나주유배생활에서 고려 말기, 귀족들에게 수탈당하고 핍박받는 백성들과 왜구들의 노략질을 직접 경험했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는 고려는 미래가 없다고 판단하게 됩니다.
정도전은 8년 동안 전국을 전전하며 새나라를 꾸리기 위한 준비를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계를 위해 서당을 운영하지만, 권문세족의 눈엣가시라고 말씀드렸죠? 그들의 방해로 인해 서당도 강제로 철회당하는 등 수모를 겪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온갖 수모를 다 겪은 정도전은 성리학의 이론만을 좇는 신진사대부들과 결을 다르게 합니다. 현실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한 것이죠.
이렇게 겉으로 나도는 정도전을 안쓰러워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절친 정몽주였습니다. 정몽주는 자신과 친하게 지냈던 이성계에게 정도전을 소개해 주게 됩니다. 고려의 충신이, 역성혁명의 주인공을 소개해주는 것이 참, 역사의 아이러니죠.
정도전은 이성계의 가별초(사병집단)를 보고 '이 정도의 군사라면 뭐든 못하겠습니까'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게 되죠. 아마 역성혁명의 대업을 이때 이성계와 상의했을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이후 정도전은 정몽주와 이성계의 추천으로 다시 관직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고려 말
1388년(우왕 12년) 명나라가 철령 이북지역(고려의 서북단)은 본디 자신들의 땅이었기 때문에 철령위를 설치해, 자신들이 통치하겠다며 통보를 해왔습니다. 이에 화가 난 우왕과 최영은 요동정벌을 주장하는데요. 하지만 요동정벌에 회의적이었던 이성계는 4 불가론을 내세우며, 반대를 하게 되죠. 하지만 왕명을 어길 수 없던 이성계는 압록강 인근 위화도에서 전염병과 보급문제로 회군을 하게 됩니다. 이 것이 유명한 위화도회군입니다. 회군하고 나서 최영을 탄핵하고 우왕을 폐위시키게 됩니다.
이 위화도회군이 즉흥적이었는지, 아니면 정도전에 의한 전략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지만, 어느 정도 정도전의 생각이 미쳤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 이유는 기다렸다는 듯, 회군 직후 정도전을 필두로 한 세력이 권문세족을 내치며 급진적인 개혁을 실시하게 되기 때문이죠. 그리고 정찬군, 왕요(공양왕)를 옹립하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이성계, 정도전, 정몽주 모두 한 배에 탄 듯 개혁을 실시하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토지개혁에서 갈라지게 되는데요. 오랜 유배생활로 민심의 바닥을 경험한 정도전은 토지개혁 없이는 대업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여, 계민수전(전국의 토지를 국유화하여 백성들에게 고르게 나눠주는 법)을 내세우게 되고, 정몽주와 대립각을 세우게 됩니다. 정도전의 새나라를 세우기 위한 노골적인 개혁을 알아가면서 말이죠.
그도 당연한 것이 정몽주 입장에서는 수문하시중(국무총리)의 직함에 올라있을 때였고, 왕 다음 이인자였으니 새 왕조가 개창을 하게 되면 본인의 자리 또한 위태로워 질게 뻔했기 때문이죠. 이성계, 정도전과 함께 해왔던 정몽주가 이제 공양왕과 뜻을 함께하여 고려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되죠. 그리고 정몽주는 정도전의 외할머니가 천한신분이라는 어이없는 명분을 내세우며, 정도전을 유배 보내 버립니다.
어려서부터 몇십 년간 동거동락했던 친구가 어느 한쪽이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 상황이 오고만 것입니다. 때마침 이성계가 낙마사고를 당해 병상에 눕게 되고, 이를 계기로 정몽주는 정도전세력을 모두 유배 보내버리고, 정도전까지 처형시킬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하지만 이성계는 정몽주가 오랫 벗이기에 차마 뜻이 맞지 않으나 제거할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새나라를 만들기 위해 정몽주는 꼭 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이성계의 5남 이방원입니다. 낙마사고로 병상에 누워있는 이성계의 문병 와서 돌아가는 정몽주를 백주대낮에 선죽교에서 이방원이 살해를 하게 되죠. 그리고는 정몽주시신을 저잣거리에 효수를 시켜버립니다. 이성계는 이방원의 독단적인 행동에 분노하였으나, 이방원 덕분에 정도전을 위시한 급진파사대부들과 함께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조선의 모든 설계는 정도전의 뜻대로 진행이 되고, 수도이전부터 군사정책까지 정도전의 손길이 안 닿는 곳이 없을 정도로 천재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죠. 하지만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이방원은 세자책봉, 사병혁파 문제로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을 죽이게 됩니다.
정몽주, 정도전 둘 다 이방원에 의해 살해된 것이 참,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몽주와 정도전은 둘도 없는 형제였으나, 새나라 건국과정에서 철천지 원수와 같이 변하게 되죠. 역사는 관점과 시기에 따라 평가가 달라집니다. 대부분 정몽주를 고려를 지키려 했던 충신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그 당시 국무총리 겪은 사람에게 새나라를 개창할 테니 도와달라고 하면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당연히 반대했을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특히 조선 중기 이후 온건파 사대부, 정몽주 세력(사림)이 과거 시험을 통해 중앙정계에 진출하면서 정몽주를 신급으로 받들어 고려의 충신이라고 불리게 되죠.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만약 이 두 사람이 힘을 합쳐, 고려든 조선이든 함께 했다면 어땠을까요.
지금까지 고려 말 두 천재, 충신 정몽주, 불꽃남자 정도전이야기였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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