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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준비된 성군, 조선 5대왕 문종 '이향'이야기

by 포도남(포기는 빠르지만 계속 도전하는 남자) 2023.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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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영화나 드라마 속 문종의 이미지는 어떠한가요? 병약하고, 나약한 이미지로 일찍 요절한 것처럼 방송에 나오고 곤 하죠. 하지만 문종은 39살까지 살았습니다. 조선 왕들의 평균 나이가 46세인 것을 보면 요절했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찍 요절한 것과 같은 이미지가 있는 것은 재위 기간이 2년 남짓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과, 12살 밖에 안 되는 단종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생긴 이미지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이향 (1414~1452)


조선최초의 적장자 계승 왕으로 본명은 이향이고, 1414년 충녕대군(세종)과 소헌왕후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1421년 8살의 나이로 세자에 책봉이 되는데요.

세종의 성격 잘 아시죠? 완벽주의자 성향의 세종은 문종에게 혹독한 세자교육을 실시합니다. 세종이 만든 문과 무, 모두를 만족시키는 '세자 커리큘럼'이라고 해야 할까요.

세자 교육 전반에 세종이 개입할 만큼 잘 만들어진 세자 교육 속에서 문종은 그 과정을 착실히 견뎌냈고, 29년 동안 세자로 있으면서 왕이 될 준비를 단단히 마치게 됩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렇게 아까운 왕도 없습니다. 게다가 세종 말기 8년 동안 몸이 좋지 않은 세종을 대신하여, 대리청정을 함으로써 왕의 자질 또한 갖추게 되죠. 정말 오래만 살았다면 세종 못지않은 위대한 군주가 되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조선은 유교의 나라로써 의례를 갖추는 것이 굉장히 힘든 일이었는데, 예를 들어 공무원이 출근했을 때 어디를 보고 어떻게 해야 하며, 어떤 의식을 취해야 하는지, 큰 어른이나 친지를 만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 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례가 한두 개도 아닌데, 어렸을 때 문종은 완벽히 해냅니다. 국가의 엘리트들이라고 할 수 있는 관료들도 실수하는 마당에 말이죠.

문종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같이 책 읽는 것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천문, 음악, 병서, 지리, 역산 등 여러 분야를 공부하였는데, 이러한 점은 아버지를 참 많이 닮아죠?
문종은 유교경전만 외우는 것 아닌 다양한 학문을 접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공부 중에서 가장 관심이 있던 분야는 군사, 천문, 글쓰기였습니다.

천문연구를 많이 하여 날씨를 예측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하니 대단하지 않나요? 게다가 글쓰기 솜씨는 워낙 뛰어나서 명나라 사신조차 문종의 글을 가져가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이 중에서 가장 좋아했던 분야는 군사분야였는데요. 훗날 전쟁과 관련된 책을 여럿 편안하기도 하였으며, 진법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용모로는 세종을 닮아서 풍채가 좋고, 근사한 수염과 잘생긴 얼굴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성격도 좋아 점잖고, 배려심 있고, 아랫사람을 막대하지 않았고, 윗사람에게는 예의를 잘 지켰다고 하죠.

악몽의 시작


14살이 되던 해 세종은 신하들에게 문종의 배우자를 찾아보라고 명령을 하죠. 그리하여 들인 세자빈은 4살 연상의 휘빈 김 씨였습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둘 사이가 좋지 못하였습니다.

3년 후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지는데요. 문종은 휘빈 김 씨보다 궁녀들과의 시간을 즐겼습니다. 이에 초초한 휘빈 김 씨는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의 신발을 훔쳐고 불에 태워, 가루를 남자에게 마시게 하면, 반대로 좋아하던 여자는 싫어하게 되고, 좋아하지 않던 여자는 좋아하게 만든다는 이상한 이야기를 듣고 행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실패하고 말죠. 유교의 나라에서 이렇게 기괴한 행동을 한다는 것이 용납이 안 되는 행위였죠. 이렇게 이상한 방법이 행해지는 가운데, 결국 걸리게 되어 세종에 의해 폐서인이 되고 궁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세종은 혹시 용모 때문인가 싶어, 둘째 부인을 고를 때는 용모가 출중한 여인을 골라야 한다고 말을 하였는데, 그래서 아리따운 여인들을 골라 문종에게 시집을 보내려 했던 것이죠. 그렇게 선택된 이가 바로 순빈 봉 씨로 조선 최고 절세미인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종의 바람과 달리 이번에는 성격차이로 세자부부의 사이가 좋지 못했던 것이죠.

그렇게 다른 후궁을 들인 문종은 후궁인 권 씨가 임신을 하게 되는데, 순빈 봉 씨 입장에서는 자식도 생기지 않고 초조하게 생각하여 임신했다는 거짓말을 하고 맙니다. 하지만 얼마가지 못해 거짓말이 들통나게 되죠. 하지만 첫 세자빈도 쫓겨낸 마당에 이번만큼은 눈감아 줍니다.

그렇다가 정말 해서는 안될 행동이 걸리게 되는데요. 바로 두 번째 세자빈은 여종과 동성사랑을 하고만 것이죠. 결국 세종은 참지 못하여 봉 씨를 쫓아내고 맙니다. 참으로 기구하죠? 하지만 아직 세자빈이 없는 상태이니 또 세자빈을 찾게 됩니다.

후궁 권 씨와 세 번째 혼례를 올리게 되는데요. 권 씨가 드디어 임신을 하고 아들을 낳게 되니, 바로 이가 노산군, 단종입니다. 그런데, 단종을 낳다가 난산 끝에 그만 죽고 맙니다. 그리하여 세자빈을 공석으로 두게 되죠.

문종 (1450~1452)

조선 5대 임금 '문종'


세종의 혹독한 세자 훈련으로 인해 위대한 작품이 된 문종은, 세종 말년 건강이 약해진 세종을 대신하여 8년 간 대리청정을 진행하며 그 실력을 선보이게 됩니다. 세종 말년의 성과는 대부분 문종의 대리청정기간으로 문종의 성과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였죠. 비로소 또 한 명의 성군이 탄생한다는 기대에 부풀었었습니다.

특히 군사분야에 관심이 많았다고 말씀드렸죠? 그리하여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의 전쟁사를 담은 <동국병감>을 편찬했습니다. 진법에도 관심이 많아 군제개편을 단행하게 됩니다. 게다가 국에 성을 점검하여 기준미달인 곳은 다시 짓게 하였고, 갑옷과 환도를 효율적으로 개선했으며, 화포와 화차를 개량하는 등 군사분야에 힘을 쏟았습니다.

측우기 아시나요? 강우량을 측정하는 조선의 대단한 발명품인데요. 대부분 장영실의 작품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문종이 세자시절 만든 발명품입니다.

하지만 세종을 너무 닮은 문종은 아버지의 몸상태까지 닮았으니, 등창으로 한 번의 고비를 넘겼지만, 세종 승하 후 3년 상을 치르면서 문종의 건강은 많이 약해졌고 황보인, 김종서, 정인(고명대신)에게 단종의 뒤를 맡기며 결국 1452년 생일 마감하게 됩니다.

측우기


영화의 모습을 모면 수양대군의 위세에 눌려 기 한 번 못 펴본 왕으로 나오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고 하죠. 수양은 문종을 깎듯이 대했고, 문종이 살아있는 동안 수양의 세력이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보아 영화나 드라마처럼 수양을 견제하긴 했으나, 앞에서 기가 죽은 듯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떠신가요? 저는 문종이 오랫동안 통치했다면 세종을 잇는 조선초기 르네상스의 주인공 중 한 명이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지금까지 부인과 자식의 복이 없었던 문종, 이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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