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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조선의 성종은 왜 성종(成宗)일까?

by 포도남(포기는 빠르지만 계속 도전하는 남자) 2022.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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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성종

드라마나 영화 속 왕들은 근엄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실제 역사 속 왕의 모습은 어땠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의외의 모습을 가진 왕이 성종이다. 흔히 세조 이후부터는 나라가 혼란스러워져 백성들이 살기 힘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성종 때만큼은 달랐다. 성종은 재위 기간 동안 국가 체제를 정비하고 민생안정 정책을 펼쳐 태평성대를 이룩하였다.

 

성종은 휘(이름)는 이혈, 25년 동안 제위 한 조선의 제9대 왕이다. 흔히 모범생으로 알려져 있는 성종은 모범생이라는 말답게 경연(신하들과의 공부)을 무려 9천 회 이상 참석했다. 거의 매일 참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모범생인 성종은 대단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 특징은 바로 '동물애호가'라는 것이다. 실제로 동물을 키우려고 하다가 신하들이 강하게 반대하여 의견 충돌이 많았다.

 

궁궐 안에서 노루, 사슴, 원숭이, 매 등 여러 동물들을 키웠는데, 그 수가 한 두 마리가 아니었다. 특히 외국에서 선물로 보내온 동물들을 다른 왕들은 쓸모가 없다고 판단하여 받지 않았던 동물들까지 모두 받아 키웠다. 성종 8년 겨울이 다가오고 원숭이에게 집을 지어주고, 옷을 해 입히라는 어명이 내려온다. 그러나 신하들이 백성들은 누더기 옷에 쌀밥조차 못 먹는데 절대 안 된다며 반대하면서 결국은 무산이 되고 만다. 이에 성종의 심기가 매우 불편해졌고, 신하 중 한 명이 원숭이 흉내를 내자 기분을 풀었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 있다. 동물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이제 명나라 사신에게 낙타 한 마리를 사 오라는 명까지 내리게 된다.

분명 조선시대에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성종의 프로필 사진은 항상 동물과 찍은 사진 또는 동물 사진이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성종이 키웠던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원숭이

 

그렇다면 왜 성종(成宗)인가? 

조선의 왕 중 가장 업적이 많은 왕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아마 대부분은 세종을 선택할 것이다. 그렇다면 세종이라는 묘호를 쓰고 있는 '충녕군 이도'가 성종이 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성종에서의 '성'자는 한자로 '이룰 성'이라는 글자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생각했을 때 이뤘다는 단어를 보면 성종보다는 세종의 이룬 업적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룰 성'자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태조, 태종, 세종, 세조를 거치면서 조선의 모든 문물제도가 완성되어 성종시대에 태평성대를 누렸기 때문이다. 특히 세조 때 시작된 조선 고유의 법전 '경국대전'은 비로소 성종 때가 되어 편찬, 반포되었다. 또한 성종이 집권하던 시기에는 큰 외세의 침략이나 농사의 흉작, 전염병도 없었기 때문에 더욱 내치에만 힘쓸 수 있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태조가 땅을 일구고, 태종이 집을 짓고, 세종이 집안을 인테리어 했다면 성종은 그 집의 가훈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맞지않을까 생각한다. 

 

해당 포스팅은 역사전문가가 아닌 일반인 기준의 포스팅입니다.

부족한 저의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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