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글
우리는 연개소문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을까. 대륙의 당나라로부터 한반도의 방파제 역할을 했던 영웅, 또는 영류왕을 시해하고, 그의 아들 연남생, 연남건, 연남산이 서로 지리멸렬하여 고구려를 신라로부터 망하게 한 원인제공자?
만약 영웅이라면, 왜 고수전쟁의 영웅인 영류왕(고건무)을 시해하고 쿠데타를 일으켰을까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 있을까. 또는 영류왕이 시해되지 않았다면 고구려가 삼국통일은 물론 대륙까지 넘볼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필자 역시 그랬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에서 조선 4천 년 역사의 최고영웅으로 칭송하고 있다. 하지만 고려시대 유학자인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높게 평가하나 당대 왕을 시해한 대역죄인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연개소문이야기를 하기 전에 영류왕(고건무)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제2차 고수전쟁 당시 수나라 양제가 113만의 병력으로 고구려 요하를 건너 요동성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4~5개월가량 요동성이 무너지지 않자, 우중문, 우문술에게 육군 별동대 30만, 내호아에게 수군 5만의 병력을 주고 평양성 진격명령을 내린다.
영양왕의 이복동생으로 왕자출신 장군인 고건무는 내호아의 수군을 맞아 싸우고 퇴각하고, 싸우고 퇴각하고를 반복하며, 육군을 기다려야 하는 내호아의 수군을 평양성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한다.
마침내 수나라의 수군이 평양성에 도달하고, 공에 눈이 먼 내호아는 거의 비어있다시피 한 평양성을 점령하여, 약탈을 시작한다. 그 틈을 타 근처 절에서 숨어있던 500명의 철갑기마병(개마무사)으로 내호아의 5만 수군을 무찔렀던 전쟁영웅이 바로 고건무이다.
영양왕이 승하하고 고구려의 전쟁영웅 고건무가 자연스레 후대왕으로 추대되게 된다. 그러면 왜 연개소문은 영류왕을 시해하고 쿠데타를 일으킨 것일까.
연개소문
우연의 일치였을까. 영류왕 1년에 수나라가 무너지고, 이연의 당나라가 중국대륙을 통일하게 된다.
이에 영류왕은 당고조 이연에 이어 당태종이 된 이세민의 당나라로부터 책봉을 받게 된다. 이 것은 바로 고구려가 당에게 제후국이 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살수대첩이 있었던 고수전쟁의 전승기념탑(경관)을 철거하였고, 군사기밀이 있었던 봉역도(고구려의 지도)를 당에게 선물하게 된다. 또한 천리장성 축조를 하고 있었으나, 이를 중단하여 당시 태학의 지식인들과 군부세력, 백성들에게 친당적인 영류왕의 치세에 대한 반대가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연개소문은 천리장성 축조당시 축조 책임자로 임명되어 있었고, 군권을 장악하고 있던 터에 군 사열(열병식)을 가장하여, 영류왕을 잔인하게 시해하고 보장왕을 옹립하게 된다. 친당적인 영류왕을 시해한 계기로 당태종 이세민은 고구려 정벌을 계획한다.
연개소문은 당시 대대로(정권)와 막리지(군권)를 통합한 고구려의 2인자 대막리지로 왕은 보장왕이었지만 실세는 바로 연개소문이었다.
당나라의 공격에 요동성과 신성, 백암성이 무너지며 고구려의 역사는 뒤안길로 접어드는 것이 아닌가 했지만, 안시성 전투에서 당나라의 거센 공격을 막아내면서, 결국 고구려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이 것이 바로 고당전쟁이다.
결국 당태종 이세민은 고구려에게 큰 패배를 안게 되고 후세에 '다시는 요동을 넘지 말라', '요동을 공격하는 것을 그만두어라'라는 유언을 남길정도의 충격을 받았고,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게 된다. 이는 중국의 경극을 보면 항상 연개소문은 무서운 얼굴에 큰 창과 칼자루 차고 있는 모습으로 나올 만큼 중국에 두려움의 존재라는 것이 아닐까?
결론
역사는 누가, 어느 시대에 기록하냐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필자 또한 그 시대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평가를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고구려가 민족의 방파제역할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방파제 역할한 중요한 인물 중 연개소문이 상당한 역할을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만약 당시 연개소문과 같은 장수가 두 명이 있었다면 중국대륙까지 진출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며 끝을 맺는다.
이 글은 역사전문가가 아닌 일반인 시각의 글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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