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건국
1392년 역성혁명을 통해 새나라가 건국되고, 이성계는 권력을 자기 마음대로 하기 위해 왕위에 오른 것이 아닌, 고려 백성들과 고려에서 관직을 했던 신하들의 마음을 얻어 나라를 꾸려가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5남이었던 이방원이 정몽주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이성계가 생각한 그 계획이 틀어지게 됩니다. 정몽주를 자기 편으로 만들어 새나라를 만들고 싶어했기 때문이죠.
어렵사리 왕위에 오르고 보니 역성혁명을 반대하던 사람들과 중립을 지키던 사람들도 제법 있었기 때문에 태조는 이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데요.
신하들 앞에서 조회도 선 채로 받으며 겸손했다고 하니, 무쌍의 이미지와 잘 맞지 않죠? 그 이유는 갑자기 많은 것을 바꾸려고 하면 민심이 떠날 것이라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대부분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자마자 조선으로 국호를 변경한 것으로 아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사실 나라이름은 그대로 고려라고 했고 심지어 법도 고려의 체계를 유지했습니다.
왕조가 바뀌었다는 것을 명나라 주원장, 홍무제에게 가서 정식으로 알리고, 국호는 무엇으로 할지에 대해 미리 정해놓고 갔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홍무제가 성격이 괴팍하기로 유명해서 조선이라는 명칭을 미리 정하고 갔으나, 혹시 몰라 화령과 조선 두 개 중 선택의 여지를 두었습니다. 홍무제가 '옛 나라 중에 조선이 있다지? 그럼 조선으로 하라' 라고 하여, 정식 국호는 조선으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논공행상
조선 건국과정에서 이성계의 아들들이 많은 공을 세웠음에도, 책봉과정에서 왕자들은 과전의 일부만 주어질뿐 공신에서는 철저히 배제되게 됩니다.
또한 정도전을 위시한 급진파 사대부들이 공신에 즐비하여 그와 반대되는 정몽주계 온건파 사대부들은 곤장을 맞아 죽거나 고향으로 낙향하여 후학을 양성하는 등 중앙정계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훗날 과거를 통해 중앙관직에 진출하게 되는데, 이들이 조선 중기부터 조선을 좌지우지하는 '사림'입니다.
세자책봉
이성계는 첫 번째 부인인 한씨에게서 낳은 6명의 아들과 강 씨에게서 낳은 2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한 씨에게서 낳은 아들은 이방우, 이방과, 이방의, 이방간, 이방원, 이방연이 있었고, 강 씨 사이에서 낳은 아들은 이방번, 이방석이 있었습니다.
이성계의 나이를 고려하여 신하들은 세자책봉을 논하는데, 첫 째 이방우가 죽은 뒤로 둘 째인 이방과가 세자가 되는 것이 맞아 보였습니다. 또는 아직 건국 초기이니, 가장 공이 컸던 다섯 째인 이방원을 책봉하는 것이 맞기도 했고요.
하지만 뜬금없이 강 씨와 정도전이 함께 이방석을 세자로 추천하니, 결국 가장 막내인 이방석이 세자가 됩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 이성계의 인생 중 가장 큰 실수로 생각됩니다.
강 씨 입장에서는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올리고 싶은 욕망이 있었을 것이고, 정도전 입장에서는 조선이 재상중심의 나라가 되어야 하는데, 만약 이방원이 된다면 왕권을 강화할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죠.
이방원
이성계를 이야기 할 때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인물이 있죠. 바로 이방원입니다. 이방원은 고려말기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생활을 하며, 아버지가 정계인사들을 만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위화도회군 당시에도 소식을 들은 이방원은 최영이 자신의 가족을 인질삼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재빠르게 한 씨, 강 씨 그리고 방번과 방석을 데리고 피신을 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역성혁명을 반대한 정몽주를 직접 제거하여 조선건국에 큰 공을 세우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러한 이방원의 독단적인 행보에 이성계는 분노하여 공신책봉은 커녕 정계에서 조차 부르지 않는 사이가 돼버리고 맙니다. 그렇게 와신상담하던 중 세자를 방석으로 책봉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방원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하지만 이성계와 정도전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이방원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조선 수도 천도 과정에서 정도전은 한양, 하륜은 무악의 의견을 내었지만 태조는 정도전의 의견에 손을 들어주었고, 그 과정에서 정도전에게 하륜은 무시를 당하게 됩니다. 정도전의 반대파를 모으고, 이들과 함께 이방원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게 되죠. 훗날 이방원을 왕으로 앉히는 데 일등공신이 바로 하륜입니다.
그 와중 공포정치를 하던 명나라 홍무제는 명나라에서 온 사신들에게 조선이 명나라를 업신여기고 있다고 하여, 왕자들 중 사신을 보내라고 압박하게 됩니다. 이에 태조는 어쩔 수 없이 이방원을 명나라 사신으로 보내는데요. 사실 명나라로 간 사신은 거의 반은 죽거나 옥살이를 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특히 왕이 홍무제였으니 더욱 그렇겠지요.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명나라로 사신을 간 이방원은 사신역할을 대단히 잘 수행하게 되고, 심지어 세자라 칭해주고 국빈 대우받고 조선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후에도 명나라로 이방원의 측근이 사신으로 오면 극진히 대접했다고 하니, 홍무제는 이방원이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함흥차사
1차 왕자의 난에 의해 정도전 등, 자신의 측근과 세자인 막내 아들을 잃은 태조는 이방원의 뜻대로 이방과를 세자로 책봉하고 자신은 고향인 함주로 향합니다. 함흥차사라는 말 아시나요? 흔히 심부름을 가서 돌아오지 않거나 소식이 없음을 비유하는 말인데요. 이게 바로 이성계와 이방원의 사이에서 생긴 말입니다.
이방원은 함주로 떠난 이성계에게 문안 인사차 사람을 보냈지만, 모두 죽임을 당해 돌아오지 않아 함흥차사라는 말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조선 건국의 아버지 태조 이성계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조선건국 이전 무쌍 이성계의 모습과 다르게 말년에는 참으로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방원에 의해 웃고, 이방원에 의해 울었던 태조 이성계였습니다. 건국 전 이성계를 다룬 블로그 글을 첨부하니 참고 바랍니다.
https://www.48lrc.com/entry/%EB%AC%B4%ED%8C%A8%EC%9D%98-%EC%9E%A5%EA%B5%B0-%EC%9D%B4%EC%84%B1%EA%B3%84
무패의 장군 이성계
여러분은 이성계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드라마 속 "방원이 네 이놈!" 하는 나이 든 중년의 모습이 생각이 나는데요. 대부분 이성계를 연기했던 배우들이 나이가 많아서 무력이 뛰어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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