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포스팅에서 신숙주를 포스팅했는데요. 신숙주와 세조를 포스팅하면서 분량 때문에 한명회를 자세히 다루지 못했습니다. 신숙주와 한명회를 함께 포스팅하려 했는데, 이 또한 신숙주만 한 회차가 넘어가서 한명회만 따로 포스팅을 하려고 합니다.
한명회 하면 생각나는 단어가 있으신가요? 칠삭둥이, 킹메이커, 간신, 살생부, 압구정 등 여러 단어들이 생각났을 텐데요. 조선 역사상 두 명의 왕의 장인이란 걸 알고 있나요? 강한 권력욕으로 두 명의 왕의 장인이 된 인물 칠삭둥이 '한명회'이야기입니다.
한명회 (1415~1487)
한명회는 1415년 한성에서 태어났고, 임신한 지 7개월 만에 태어났다고 해서 칠삭둥이라고 불립니다. 미숙아 상태로 태어나서 아이 형태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오래 살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그의 부모는 한명회를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유모는 아이를 따로 키우게 되고, 그 아이는 점차 사람 형태를 띠게 됩니다. 그제야 유모는 한명회를 부모에게 보여줬다고 합니다.
한명회의 할아버지인 한상진은 조선 건국 때 명나라 사신으로 가서 국호를 받아 온 공신 중 한 사람이었고, 할아버지의 동생은 영의정까지 지낸 금수저 집안이었습니다. 한명회는 대부분 사극에서 별 볼일 없는 집안에서 태어난 것처럼 묘사가 되어있었죠?
한명회는 40살까지 과거에 여러 번 응시했으나, 공부랑은 거리가 멀었는지 매번 낙방하고 맙니다. 결국 문종 시절 음서(고위직 관료의 친족에게 시험 없이 관직을 주는 것)로 경덕궁 궁지기인 종 9품, 말단 관리로 관직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주변관리들의 시선은 따가웠는데요. 경덕궁직이 워낙 말단 관리직이었기 때문에 벼슬로 인정하지 않았죠.
한명회는 인맥을 관리하는 것에는 탁월했으며, 시대를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권람에게 도움을 받아 문인, 무인을 가리지 않고 인맥을 쌓기 시작합니다. 이후 단종이 왕위에 오르고, 그는 인생의 기회를 잡게 됩니다. 한명회는 권력욕이 대단했는데요. 그의 권력욕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사람과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바로 수양대군이었던 것이죠.
수양대군은 당시에 안평대군과 김종서세력에 의해 많은 견제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를 알고 있는 한명회는 오랜 친구인 권람에게 수양대군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하게 되죠.
사실 수양대군입장에서 권람의 말만 듣고 한명회를 자기편으로 들이기에 탐탁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왜냐면 종 9품 하급관리였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권람을 믿고 수양대군은 한명회와 함께 하기로 합니다. 이때부터 한명회는 수양대군의 오른팔로 브레인 역할을 하게 되는데요. 특히 안평대군과 김종서의 측근들의 정보를 알아내기 시작합니다.
수양대군과 한명회는 안평대군, 김종서, 황보인 등을 제거하는 계유정난을 일으키게 되죠. 그렇게 한명회는 수양대군의 측근으로 큰 공을 세워 공신대우를 받게 됩니다. 종 9품 경덕궁직의 별 볼일 없던 한명회가 인생역전을 한 계기가 되는 것이죠. 수양대군이 사실 강력하게 계유정난을 밀고 나가지 못했습니다. 안평대군, 김종서, 황보인의 세력보다 별 볼일 없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한명회는 지속적으로 수양대군을 설득하여 거사를 진행하는데 큰 도움을 주게 됩니다.
계유정난 직후 궁궐의 문을 하나만 남긴 채, 모두 닫고 그 하나의 문으로 들어오는 관리들에게 '살생부'(죽이고 살리는 명단)에 적힌 이름을 신호를 보내어 많은 사람들을 살해했다는 유명한 이야기 들어보셨죠? 조선 판 데스노트라고 보면 되겠네요. 이 살생부 이야기는 야샤로 전해집니다.
이후 단종복위운동이 비밀리에 벌어지면서, 세조를 암살하기 위한 세력이 있었는데요. 이들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박팽년, 성삼문, 이개, 하위지 등이 주도한 것이죠. 바로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연회장에서 왕을 호위하는 호위병이 단종을 복위시키기 위한 인물이었는데요. 이때 호위병으로 세조를 제거하려 했습니다. 이를 눈치챈 한명회는 연회장이 좁고 무더우니 칼을 찬 호위병을 들이지 말라고 조언을 하게 되죠. 그리하여 호위병 없이 사신을 접대하면서 단종복위운동이 실패로 돌아가게 되고, 결국 내부고발로 모든 것이 다 알려지게 되죠.
만약 한명회가 언질을 주지 않았다면 단종복위운동이 성공했겠죠? 그 후 한명회는 단종복위운동의 싹을 제거하기 위해 단종 또한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이를 승인한 세조는 단종을 강원도 영월로 유배 보내었고, 끝내 단종은 17세의 어린 나이에 요절하고 맙니다.
게다가 단종과 관련된 사람들을 심하게 고문하기도 했는데, 이 사람들이 무슨 잘못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되었죠. 그를 반증하는 의미로 숙종 때 억울하게 처벌받았던 사람들의 신원이 복원되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권력욕을 가진 두 왕의 장인
계유정난 이후 한명회는 왕실에 두 딸을 예종(장순왕후)과 성종(공혜왕후)에게 시집보내고, 좌의정, 우의정, 마침내 영의정이 되면서 최고 권력자로 등극하게 됩니다. 경덕궁의 말단 관리였던 한명회는 14년 만에 최고 권력의 자리에 까지 올랐고, 세조가 죽은 뒤에도 예종을 거쳐, 성종 때까지 권세를 누렸다고 하니 천하가 두렵지 않았겠죠?
한명회는 압구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그곳에서 권력욕이 없는 척 행세를 했죠. 이쯤 되니, 백성들까지 한명회를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줄을 대려는 사람들이 압구정에 문정성시를 이룰 정도로 권세가 하늘을 찔렀죠.
하지만 성종에게 시집을 보냈던 공혜왕후가 자식이 없이 젊은 나이 죽고, 하늘 높은 줄 몰랐던 한명회의 권세가 조금씩 힘을 잃기 시작합니다. 성종은 그에게 궤장(높은 관직의 늙은 신하에게 하사하여 퇴임을 기념하는 지팡이)을 하사하며, 용퇴를 권하지만 한명회는 성종의 뜻을 거스르며 그 자리를 버티게 됩니다.
그의 압구정이 화려하다는 소식에 명나라의 사신과 일본의 사신들까지 와서 구경하려고 하자, 궁에서 임금이 행차할 때 사용하는 용봉차일(지금의 천막)을 본인의 정자에 사용하려고 합니다. 정말 겁이 없었죠? 하지만 성종이 이를 거절하자 한명회는 성종에게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대간들로부터 무례하다는 탄핵을 받아 유배되었으나, 금방 사면되어 풀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압구정에 명나라 사신을 개인자격으로 불러 접대한 일이 발각되면서 다시 한번 탄핵되어 관직에서 쫓겨나게 되죠. 정신 못 차렸죠? 그렇게 권력을 잃은 한명회는 병을 얻어 73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됩니다.
한명회에 대한 평가로 실록에서는 "도량이 크고 성격이 활달했으며, 결단력이 뛰어났다"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만큼 지략가로서의 능력은 대단했을지 모르지만, 그러한 권세를 이용하여 재산을 부정축재하였고, 비정상적인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그에 대한 대가였을까요. 그의 딸인 장순왕후와 장순왕후의 아들인 인성대군, 공혜왕후까지 모두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죠. 한명회가 죽은 뒤에도 연산군에 의해 무덤에서 시체를 꺼내어 다시 한번 참수하는 부관참시를 당하게 됩니다.
서울에 압구정동이 있는 것 알고 계신가요? 압구정의 압구는 한명회의 호인 데요. 압구로 호를 정한 이유는 "세상의 일을 다 버리고 강가에 살며 갈매기와 친하게 지낸다"는 뜻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압구정동의 대부분 한명회의 땅이었다고 하니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이 압구정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바로 실록인데요. 위의 내용처럼 "한명회가 중국의 사신을 맞으려 했으나, 왕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라고 <성종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자신의 권세를 누리기 위해 정적을 제거한 한명회의 이야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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