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 블로그 포스팅을 하면서 세종, 문종, 단종, 세조를 거치며 꼭 언급되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신숙주인데요. 신숙주 이야기를 왕의 이야기 안에 넣자니, 이야기가 너무 방대해져서 예종을 들어가기 전에 포스팅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글을 쓰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신숙주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변절자, 변절의 화신과 같이 변절자의 대명사로 생각이 될 건데요. 숙주나물의 '숙주'가 신숙주의 '숙주'에서 따온 이름이란 것 아시나요? 원래는 숙주나물의 이름은 '녹두나물'이나 선도가 오래가지 않아 금방 갈색으로 변한다 하여 숙주나물로 불리게 된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변절자로 각인되어 있는 것이겠죠. 하지만 그는 조선초기를 이끈 명재상이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지금부터 명재상? 변절의 대명사? 신숙주 이야기 시작합니다.
신숙주 (1417~1475)
신숙주는 전남 나주 출생으로, 1439년 세종 21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세종의 싱크탱크라고 할 수 있는 집현전으로 발령받아 관직생활을 시작합니다. 집현전에서 우리가 익히 들어본 성상문, 박팽년 등과 함께 공부를 하며 친구가 되었고, 그중에 가장 친한 사람은 바로 성삼문이었습니다.
사실 과거에 급제한 것만으로도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대단했는데, 집현전 학자들 중에서도 공부에 대해서는 굉장한 우등생이었으니, 정말 천재 중 천재였던 것이죠.
특히 당시 집현전에는 당직제도가 있었는데, 글 읽기를 하도 좋아해서 당직을 대신 서고 글을 밤새 읽기도 했습니다. 이때 글을 읽다가 책상에서 잠들었는데, 세종이 조용히 다가와 곤룡포를 이불처럼 덮어주고 갔다는 이야기 들어보셨죠? 그만큼 세종이 아꼈던 인재였습니다.
이런 신숙주의 대표적인 능력은 바로 외교력이었는데요. 조선어, 중국어, 일본어, 힌디어, 아랍어, 몽골어, 여진어까지 7개 국어를 마스터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합니다. 특히 일본에 외교관으로 간 적이 있는데, 이때 일본의 풍습과 역사를 정리한 <해동제국기>를 편찬했으며, 이는 일본의 가장 오래된 지도 중 하나라고 합니다.
게다가 언어에 능통한 탓인지 훈민정음 창제 프로젝트에도 성삼문과 함께 참여하여, 훈민정음이 반포되는 데에도 일조를 한 샘이죠. <용비어천가>등 한글로 된 글을 세종이 편찬할 때 신숙주가 꼭 참여했다고 합니다.
한 번은 명에서 사신이 왔는데, 신숙주가 지은 시를 보고는 '동방에서 학식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고 극찬했다고 하니 어느 임금이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세종이 병상에 누워 승하하기 전에 집현전 학사들에게 아들인 문종과 손자인 단종을 지켜달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함께 있었던 신숙주와 성삼문은 나중에 반대편으로 갈라지게 되죠. 세종이 승하하고 문종이 왕이 되었을 때 신하들은 두 세력으로 나뉘게 됩니다. 세종의 차남이었던 수양과 3남이었던 안평이죠. 이때까지만 해도 성삼문과 신숙주는 안평과 더 가까이 지냈습니다.
문종이 2년 만에 갑작스레 승하하고 단종이 왕이 되었습니다. 안평 쪽 세력은 김종서, 황보인 등 걸출한 재상들이 있었는데, 수양은 상대적으로 세력이 약했었죠. 이에 수양은 야심을 숨기기 위해 고명사은사를 자청하여 명나라에 사신으로 안평대신 자진하여 가게 되는데, 이때 신숙주도 함께 동행을 하게 됩니다. 아마 명나라로 함께 사신단으로 갔다 오면서 상당히 친해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후 수양은 계유정난(1453)을 일으켜 김종서, 황보인 등 안평세력을 제거하는 데 성공하고, 공신책봉을 진행하는데, 신숙주가 2등 공신, 성삼문이 3등 공신인 것으로 보아 아마 둘 다 계유정난에는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수양은, 자신의 기반이 부족했기에 아마 집현전 학자들을 자신의 편으로 편입시키려, 이러한 공신책봉을 진행한 것이겠죠. 이후 단종이 수양에게 선위를 진행하면서 수양은 조선의 7대 임금, 세조가 됩니다. 이때 신숙주는 1등 공신으로 책봉된 것으로 보아 이때부터 신숙주는 수양을 지지했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세조가 왕이 되고 왕권강화 정책을 실시하는데, 세종, 문종을 거치며 신권이 강했던 치세에 갑자기 태종 때로 회귀하여 신숙주를 제외한 집현전 학자들의 반발을 사게 됩니다. 성삼문, 박팽년 등이 집현전 학자들과 단종복위운동을 준비하면서 신숙주에게 참여를 부탁하지만 단칼에 거절합니다. 한마디로 신숙주는 집현전학자들과 왕권 반대세력이 세조를 제거하고 단종을 복위시키는 계획을 미리 알았던 것이죠. 이를 세조에게 언질을 줬던 주지 않았던 그 이유를 차치하더라도 말이죠. 실록에서는 황보인의 종이 거사일과 거사 참여인원까지 이야기했다는데, 앞뒤가 맞지 않죠?
성삼문이 자신의 경호병력을 이끌고 세조를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우지만, 한명회의 건의로 명나라사신 연회에 경호병력 없이 진행하기로 한 것을 보면 아마 신숙주가 한명회에게 언질을 줬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니면 적어도 신숙주 선에서 단종복위운동을 저지하려고 한 것이겠죠. 이에 단종복위운동을 참여한 세력은 김질의 내부고발에 의해 발각되게 되고,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응부, 유성원은 끝내 단종의 절개를 시키며 사육신(죽은 여섯 명의 신하)으로 남아 충절의 아이콘이 되고, 반면에 신숙주는 변절의 아이콘이 됩니다. 단종복위운동이 실패로 돌아가고 신숙주는 세조의 강력한 오른팔이 되죠.
신숙주는 머리도 좋았지만 군 통솔력도 굉장히 좋았습니다. 특히 대규모 군을 통솔하는 실력이 뛰어나 왜구를 토벌하고, 여진족을 정벌하는 등 신하로써 요즘 쓰는 말로 '먼치킨' 같은 능력을 보여줬습니다. 끝내 임금을 제외하고 최고 권력자인 영의정을 지냈으며, 예종, 성종 때까지 실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게다가 당시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권세를 믿고 자신의 곳간을 채우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신숙주는 나름 청렴한 했다고까지 하니 대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후대에는 변절의 대명사로 불리는 신숙주는 조금 억울하지 않을까요? 오히려 조선 초기 명재상 중 한 명으로 기억됐다면 좋았을 인재였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물론 사육신으로 불리던 성삼문, 박팽년 등이 제거된 일은 너무 안타깝지만 말이죠.
훈민정음 창제, 외교술의 천재, 7개 국어 능통자, 조선초기 명재상 신숙주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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