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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아버지를 매우 닮고 싶어했던 조선 8대왕 예종'이황'이야기

by 포도남(포기는 빠르지만 계속 도전하는 남자) 2023.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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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사실 저는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없는데요. '태정태세문단세예'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 단순히 세조의 아들 정도로만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즉위 1년 3개월 만에 승하했기 때문인데요.

 

아버지의 묘호인 '세조'가 원래 '신종'으로 하려 했으나, 예종이 강력하게 밀어붙여 세조가 된 것 알고 계셨나요? '조'는 나라를 건국했거나, 공이 탁월한 임금에게 주는 묘호인 반면 '종'은 덕이 있는 임금을 뜻했습니다. 형식적으로 종보다는 조가 의미가 더 좋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만큼 예종은 자신의 아버지 세조를 많이 좋아했고, 아버지처럼 강력한 왕권을 이룩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종이야기 시작해 볼까요. 7대 임금 세조는 아래에 첨부해놨으니 참고바랍니다.

https://www.48lrc.com/entry/jo7

 

내가 왕이될 상인가? 조선 7대왕 세조'이유'이야기

혹시 여러분은 영화 '관상'을 보셨나요? 사실 수양대군, 세조이야기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제작이 많이 되었었죠. 하지만 우리 머리에 각인된 수양의 이미지는 관상에서 등장씬이 아닐까 생각됩

www.48lrc.com

 

이황 (1450~1469)

 

1450년 세종이 왕일 당시 수양대군과 윤씨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사실인 수양은 훗날 세조가 되지만 이황은 원래 자기가 왕의 자손도 아니고 위로 12살 나이 차이가 나는 형이 있었기 때문에 왕위와는 거리가 멀었죠. 하지만 아버지가 계유정난으로 단종을 끌어내리고 왕이 되자 하루아침에 해양대군으로 봉해진 것이죠. 장남인 형이 있었기 때문에 세자는 당연히 형인 의경세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형이 갑작스레 죽게 되면서 8살의 어린 나이로 세자로 책봉이 되죠.

 

세자인 이황은 세조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왕이 되기 위해 학문과 자질을 갖추어 나갔습니다. 1468년 세조는 몸에 난 종기가 온몸으로 퍼지며, 병세가 날로 악화되어 서둘러 아들인 예종에게 왕위를 넘겼고, 이로써 예종은 조선의 8번째 임금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우연의 일치도 아니고 예종으로 즉위한 다음날 상왕 겸, 부왕인 세조는 승하하고 말죠. 아버지를 엄청 사랑하고 존경했던 예종은 한동안 음식을 먹지 않았을 정도로 슬픔에 잠겼습니다. 음식을 멀리하고 슬픔에만 잠기다 보니 어린 나이였지만 예종의 건강도 점점 나빠져갔습니다. 

 

예종 (1468~1469)

드라마 속 예종

 

예종은 아버지인 세조가 나라의 어려움을 평정하고 새로운 국가를 세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며, 신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묘호를 '세조'로 관철시켰습니다. 

 

우선 왕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왕권을 행사하기엔 어린 나이로 인해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어머니인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발을 내리고 정치를 듣는다는 표현, 영화나 드라마에서 어머니, 할머니가 발을 내리고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많이 보았죠?)하는 동시에 세조의 유언에 따라 신숙주, 한명회가 나랏일을 결정하게 하였고, 왕은 형식적인 결재만 하였죠.

 

하지만 예종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법에 입각해 신하들을 엄격하게 다스렸으며, 원로 대신들이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것에 대해 분경(집에 찾아와 청탁하는 것)을 금지하여 견제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아버지와 같이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했죠. 

 

왕이 된 후 경연을 게을리하지 않았고, 학문을 가까이하여 역사서인 <역대세기>를 직접 편찬하기도 하였고, 조선의 역대왕들 때 있었던 정변과 외부의 침략을 정리한 <무정보감>도 편찬하게 했습니다. 아버지 때 편찬한 <경국대전>을 수정과 보정을 거쳐 최종반포단계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경국대전 반포를 앞두고 급사하는 바람에 그 업적은 후대왕인 성종의 업적이 되어버립니다. 

 

계유정난을 일으킨 한명회 등 정난공신세력은 이시애의 난을 진압했던 남이를 포함한 적개공신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남이장군 아시나요? 많이 들어보셨죠. 이시애의 난과 여진족을 토벌했던 조선의 영웅 중 한 명이었는데요. 27세에 병조판서(국방부장관)를 역임했다니 대단하지 않나요? 남이는 정난공신들의 모함으로 인해 예종은 남이를 좌천시켜 버립니다. (남이의 옥사 또는 남이의 옥)

 

이에 불만을 갖고 있던 남이는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 징조"라고 말하였는데, 때마침 듣고 있던 유자광이 남이가 역모를 꾀하고 있다고, 고변하게 되어 죄도 없는 많은 사람들이 고문을 받았으며,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노비가 되었습니다. 남이도 이를 인정하였다고 하는데요. 사실 남이 역모 사건은 정난공신세력들이 적개공신 세력인 남이를 모함하여 일으킨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죠. 

 

예종은 세자부터 앓아 온 족질이 발병하여, 재위 15개월 만에 만 19세의 나이로 급사하였는데, 결국 세조실록을 완성하지 못한 채 눈을 감게 된 것이죠. 

 

아버지를 지극히 존경하고 사랑했던 예종'이황'이야기 어떠셨나요? 재위기간이 1년 남짓밖에 되지 않아 우리 머릿속에 자리 잡지 못했지만 아버지가 편찬한 <경국대전>을 반포 단계에 이르렀을 만큼 아버지를 닮고 싶고, 사랑했던 예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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