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성종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경국대전의 반포, 폐비 윤 씨, 주요순 야걸주, 동물애호가 등 여러 가지가 생각이 날 것인데요. 조선초기 태종과 세종, 세조를 거치며 완성형 군주가 된 성종 '이혈'이야기 시작합니다. 8대왕 예종이야기는 아래에 첨부하였으니 참고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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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매우 닮고 싶어했던 조선 8대왕 예종'이황'이야기
예종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사실 저는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없는데요. '태정태세문단세예'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 단순히 세조의 아들 정도로만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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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산군(자을산군) (1457~1495)
예종이 재위 1년 3개월 만에 갑자기 승하하고, 후계를 누가 이를지에 내한 논의가 한창이었습니다. 물론 적장자를 세운다면 예종의 원자인 제안대군이 왕이 되어야 했으나, 네 살 밖에 되지 않았고, 예종의 형인 의경세자의 두 아들이 월산군(16살)과 잘산군(13살)이 있었습니다.
당시 예종의 수렴청정을 하고 있었던 정희왕후는 어려서부터 뛰어난 인품과 실력을 지녔던 잘산군을 보위로 올리게 되지만, 사실 잘산군의 장인인 한명회가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보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성종 (1469~1495)
이로써 조선의 9대 왕 잘산군은 임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13살의 나이로 친정을 하기에는 어려웠습니다. 이에 세조의 아내이자 할머니인 정희왕후가 수렴청정(가림막 뒤에서 대신 정사를 돌봄)을 진행하였는데, 7년 간 수렴청정을 아주 잘하여 수렴청정의 교과서로 불립니다.
이러한 수렴청정은 당나라 '측천무후'가 만든 것으로 마치 자신이 권력이 있는 것처럼 권력에 취하여 황제를 폐위하고 자신이 황제자리에 오르는 등 사람에게 권력이 주어지면 의례, 그 권력을 쓰기 마련인데, 정희왕후는 임금에게 조언만 했을 뿐 권력을 빼앗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정희왕후 주변지인들의 청탁이 이어지자 딱 잘라서 거절했다고 하니 대단하죠? 또한 잘한 일은 모두 성종이 한 일이고 잘되지 못한 일은 모두 자신 탓이라며 겸손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우선 성종의 수렴청정을 하던 정희왕후는 호패법을 폐지하는데요. 사실 호패법(16세 이상 남자들에게 채워지는 주민등록 제도)은 세수를 거두는 데 좋은 정책이나 백성들 입장에서는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안 좋은 제도였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폐지하자는 상소가 올라왔습니다. 이에 정희왕후는 성종, 6조 대신들과 상의하여 호패법을 폐지합니다.
성종이 재위에 오르고 재상들과 정희왕후가 정사를 돌봤기 때문에 성종은 그다지 할 일이 없었을 것 같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특히 경연은 아침, 점심, 저녁까지 하루에 총 세 번이 이루어졌는데요. 경연에서는 유학, 정치, 왕으로써의 덕목 등 나라를 운영하는 것에 대한 많은 것을 신하들로부터 배워야 했습니다.
특히 경연을 매우 싫어했던 세조는 본인이 신하들에게 꾸중을 듣는 것 같아 폐지까지 해버리는데요. 그만큼 임금입장에서는 하기 싫어하는 것이 경연이었습니다. 하지만 성종은 경연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고 합니다. 심지어 경연을 세 번이나 하는데 대신들은 야대(자기 전 경연)까지 총 네 번을 하라고 청하게 됩니다. 성종은 이를 수락하여 세 번의 경연에서 네 번으로 확대가 되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프로성실러'겠네요.
7년의 수렴청정기간을 마치고 드디어 친정을 하게 된 성종은 예종과 성종의 수렴청정 시기를 거치며, 너무 커버린 대신들을 견제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대신들 중 한명회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국정을 좌지우지하고 있었습니다.
김순성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평창군수로 발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허나, 시골인 평창으로의 발령이 싫었던 김순성은 한명회에게 청탁하여 아내가 아프다는 핑계로 평창으로의 발령을 피하려고 했는데요. 이 일을 사헌부 관료가 한명회를 고발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일을 먼저 안 한명회는 김순성의 아내가 아프다는 것은 관료들 대부분이 알고 있는 것이니, 저를 해임해 달라고 오히려 먼저 선수를 칩니다. 한명회의 정치는 백 단이죠. 성종은 이러한 한명회를 문책하지 않고 오히려 사헌부 관료를 좌천시키는데요. 한명회의 권력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오시죠?
이후 대간들은 한명회를 탄핵시켜야 한다는 상소가 빗발치는데요. 눈치 백단 한명회는 오히려 먼저, 발병이 낫지 않아 해임을 해달라고 건의합니다. 탄핵보다는 왕으로부터 해임이 낫다는 생각이었죠.
이렇게 권력에서 물러난 한명회는 남은 여생을 한가로이 기러기를 벗 삼아 즐기기 위해 압구정이라는 정자를 짓는데요. 이때 권력으로부터 아예 멀어지는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조선을 방문한 명나라 사신이 압구정이 잘 되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압구정을 가고 싶다고 한 것인데요. 이때 압구정이 좁다는 것을 핑계로 임금이 사용하는 천막을 빌려달라고 합니다. 이를 단칼에 거절하고 궁 안에 있는 사신을 대접하는 곳에서 명나라 사신 연회를 한다고 하자. 한명회는 아내가 아프다는 핑계로 연회참석을 거절합니다.
자신의 압구정에서 명나라 사신과 노는 것은 괜찮고, 궁 안에서 하는 연회는 참석을 못한다라.. 이러한 한명회를 잡아 국문을 시킵니다. 하지만 금방 풀어주게 되죠. 그리고 몇 년 뒤 한명회가 죽었지만, 수렴청정을 같이 했던 대신들이 아직 관직에 남아있었는데요. 우리는 이들을 훈구파라 부릅니다.
자신의 힘을 강화시켜야겠다고 생각한 성종은 무신들을 등용하여 문신들을 견제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글을 모르는 무신들의 한계를 느끼고 실패하게 되죠.
훈구파를 견제해야 하는 성종은 새로운 세력을 등용하는데요. 바로 이들은 조선 개국에 반대하여 낙향해, 지방에서 자신들만의 유교사상을 통해 제자를 양성한 온건파 사대부 '사림'입니다. 특히 대표인물로는 김종직이 있는데요. 지금의 비서실장격인 도승지를 역임하게 됩니다. 김종직이 관직에 올랐다는 소문을 듣고 그의 제자들이 과거시험을 통해 중앙정계에 진출하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주로 언론 3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에 발령을 받았는데요. 이로 인해 기존 대신들을 견제할 수 있는 대간의 힘이 강해진 것입니다.
성종은 세종과 같으면서도 달랐습니다. 세종은 변화와 개혁을 통해 조선이라는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성종은 역대임금들의 행정을 잘 본받아 유교국가 조선이라는 이상적인 나라로 만드려고 했습니다. 특히 없어진 제도를 다시 복구시켜 잘 다듬는 역할을 했습니다. 대표적인 기관으로는 홍문관이 있는데, 홍문관은 임금뿐만 아니라 대신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로 인해 대신들을 대간들이 견제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세종이 실시했던 사가독서제(문신들에게 휴가를 주어 책을 읽게 하는 제도)를 부활시켰고, 조선의 기본예절을 적은 책 <국조오례의>와 단군조선부터 고려까지의 역사를 적은 <동국통감>을 완성시켰으며,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 삼국시대부터 조선초기까지 시집인 <동문선>, 역사들의 악기들의 연주방법 등이 실린 <악학궤범> 등 여러 서적을 편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화룡점정인 조선의 기존 법령이라 할 수 있는 <경국대전>를 반포하였습니다.
조선은 유교국가죠? 그리하여 불교를 매우 배척했습니다. 이에 유교적 임금인 성종은 금승법을 제정하여 승려가 되는 것을 막기도 하였습니다.
성종의 시대는 대규모 침략이나 국내의 반란도 없었고, 백성들은 전쟁이 없는 가장 행복한 시기를 살았었습니다. 하지만 문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무가 약해져, 나라의 국방은 한참 뒷전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성종은 동물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그리하여 궁에서 많은 동물을 키웠는데, 개, 고양이, 사슴, 원숭이, 기러기, 앵무새, 매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간들은 이러한 성종을 매우 질타했습니다. 가뭄 때문에 힘든 와중에 매의 새장을 만든다고 하니 극구 반대를 하는데요. 결국 키우던 매를 모두 풀어주고 맙니다.
어디서 들었는지, 명나라에 낙타라는 동물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이에 비단을 주고 명나라에서 낙타를 구해오라고 명하게 되는데요. 대간들은 아니 된다고 하며 또 성종을 질타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비단을 콩으로 환산하면 72,000kg이니 대간이 질타할 만도 하죠?
이처럼 성종은 늘 대간들의 견제에 시달리며 살았습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나머지 독한 술을 자주 마셨고, 밤에는 여자들은 침소에 들이는 일이 잦았습니다. 그리하여 성종의 별명은 '주요순 야걸주'라고 불릴 정도였으니까요. 이 뜻은 '낮에는 요순왕 같은 성군이지만 밤에는 걸주와 같은 폭군'이라는 뜻입니다.
성종은 후궁을 12명을 들이고 자식도 28명이나 낳았는데, 이를 훗날 폐비윤 씨(연산군의 어머니)가 되는 아내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도가 지나친 질투가 많았던 윤 씨는 다른 후궁들을 저주하는 책을 가지고 있었으며, 항상 독약인 비상이라는 약을 들고 다녔다는 것인데요. 이를 들키게 되지만 대신들의 반대로 한 번은 봐주게 됩니다.
하지만 어디 안 가죠. 후궁과 같이 있는 성종을 불쑥 찾아와 째려보고, 수렴청정하는 정희왕후가 꾸짖자 째려보는 등 왕비와 전혀 맞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결국 폐서인 되었는데, 이때 아들이 있었으니 훗날 연산군입니다. 이러한 폐비 윤 씨가 살아있는 것에 대한 부담을 느낀 대신들은 성종에게 결단을 하라고 하여 결국, 사사하여 죽게 됩니다. 이 사건이 조선역사에 큰 비극이 되었네요. (갑자사화)
38살이 되던 해 성종은 천식과 종기로 인해 점점 건강이 악화됩니다. 그 해 12월 죽음 맞을 맞이하게 되는데요.
어린 나이에 보위에 올라 경연을 9229번이나 참석하며 조선 초기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던 군주였습니다. 게다가 이 시기 큰 외세의 침략도 없었고, 자연재해도 없어서 백성들이 행복한 시기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유교경전을 너무 공부한 탓인지 조선은 임금의 나라였으나, 조선 개국 때와 같이 신권 중심의 나라가 되어 대신, 대간들의 힘을 많이 커지게 되죠. 이와 같이 왕권이 약해져 있음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그의 아들 연산군입니다.
이상 완성형 성군 성종 '이혈'이야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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