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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내가 의적이라고? 진짜 임꺽정이야기

by 포도남(포기는 빠르지만 계속 도전하는 남자) 2023.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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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에 대해 잘 아시나요? 몇 번 드라마 소재로도 등장한 적이 있죠. 우리는 임꺽정을 의적이라고 흔히 알고 있는데요. 사실 임꺽정은 의적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하지만 일부 백성들에 의해지지를 받은 것은 사실이었죠. 명종시대 활동했던 도적 임꺽정이야기 시작합니다.
명종시절이야기는 이전 블로그에 포스팅했으니 참고 바랍니다.
https://www.48lrc.com/entry/Myeongjong-Story

 

어머니의 치맛바람 속 조선 13대왕 명종'이환'이야기 (feat.을사사화)

조선의 명종 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나요? 저는 문정왕후의 치맛바람 속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했던 임금으로 생각되고, 임꺽정, 을사사화가 생각나네요. 역대급 짧은 치세를 했던 인종이 30세로

www.48lrc.com

 

임꺽정 (생몰미상)

드라마 속 임꺽정

 
임꺽정은 외척정치가 끝판왕을 이루던 명종시절 활동했던 도적입니다. 임꺽정은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고, 을묘왜변 당시 나라를 위해 열심히 싸웠지만 천민인 백정 출신이기 때문에 공을 인정받지 못하였죠.
 
을묘왜란이 일어나고 외척세력들이 재산을 부정축재하는 등 왕권은 실추되었고, 외척들이 권세를 이루던 시기였습니다. 고을의 수령들은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어 세금을 걷게 하였고, 조정에서는 외척세력들의 배를 불려주기 위해 더욱더 세금을 부가하게 되어,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았고, 스스로 승려가 되거나 노비가 되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가뜩이나 명종재위시절에는 자연재해도 빈번하여 백성들의 삶이 팍팍해져만 갔습니다. 
 
자식들이 굶어 죽고, 늙은 부모가 굶어 죽는 것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도적 떼에 들어가 약탈을 하기도 하였는데요. 이 시기 임꺽정을 필두로 한 민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게다가 명종시기 황해도의 개간사업이 한창이었는데, 개간한 땅이 완성되면 개간한 땅의 일부를 백성들에게 배당해 주기로 하였습니다. 이때 노동력으로 황해도지역 백성들을 사용했으나 막상 공사가 완료되고 나니, 백성들에게 나눠주기는 커녕 관리들이 그 땅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갈대밭에서 나오는 갈대를 가지고 상품을 만들어 팔자 이 또한 관리들이 갈대밭을 빼앗아 버렸죠. 민란이 안 일어날 수가 없는 시대였습니다. 
 
이렇게 부패한 관리들을 보며 직접 징벌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임꺽정은 관리들에게 빼앗긴 땅과 갈대밭으로 인해 떠도는 백성들과 함께 황해도를 거점 삼아 민란을 일으키는데, 이는 곧 경기도, 강원도, 평안도까지 세력이 커져만 갑니다. 게다가 이렇게 쌓은 부로 지방향리들을 포섭하기도 하죠.
 
이후 속전속결로 관아와 민가 할 것 없이 약탈을 시작하였고, 한양과 평양으로 가는 길목을 점거하여 지나가는 백성들을 약탈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시기 관아를 점령하여 투옥된 백성들을 풀어주었고, 양반집을 습격하여 노비문서를 불태우는 듯 백성들에게 지지를 받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하지만 도적은 도적이었죠. 
 
생각보다 심각한 민란을 본 조정에서는 이억근이라는 사람을 통해 임꺽정을 잡아오라고 명하지만 이미 지방향리들과 결탁하여 미리 정보를 알 수 있었죠. 이러한 임꺽정은 오히려 이억근을 미리 공격하여 제압했습니다. 
 
이번에는 조정에서 개성부도사와 함께 더 큰 군대를 몰고 황해도로 진격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렸는데, 미리 소식을 들은 임꺽정은 인근지역으로 돌아다니며 군대를 피해 다녔습니다. 만약, 임꺽정의 위치를 밀고한 밀고자가 있으면 배를 갈라 죽였습니다. 
 
임꺽정은 더 큰일을 실행하게 위해 비밀리에 한양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하지만 핵심참모가 한양에서 관군에게 잡히게 되는데, 이에 500명의 관군을 구성하여 임꺽정이 있다고 하는 아지트를 습격합니다. 하지만 임꺽정의 세력이 더 강했는지 오히려 관군이 당하고 관군이 수장이 죽는 등 관군이 크게 패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임꺽정에게는 엄청난 현상금이 붙게 되는데, 지방수령들은 가짜 임꺽정을 잡아다가 고문하여 거짓자백을 받아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임꺽정에 대한 전국적인 수배령이 떨어졌고 얼마 안 가 잡혔습니다. 잡힌 후  보름 만에 처형당하고 말죠. 
 
이때 실록을 기록하는 사관이 임꺽정에 대해 엄청 좋지 않게 써놓았을 것 같지만, "도적이 성행하는 것은 수령의 가렴주구 탓이며, 수령의 가렴주구는 재상이 청렴하지 못한 탓이다."라고 써놓은 것을 보면 굉장히 대단한 사관인 것 같으면서도 얼마나 나라가 개판이었으면 저렇게 기록을 했을까 합니다. 
 
진짜 임꺽정의 이야기 어떠했나요? 진짜 의적인가요? 제가 볼 때는 기록이 많지 않아 오랜 시간 구전되다 보니 아마 의적처럼 표현이 된 것 같습니다. 실록에는 임꺽정이 아닌 임거질정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한자와 우리말의 표현법이 달라 기록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내가 의적이라고? 진짜 임꺽정이야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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