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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어머니의 치맛바람 속 조선 13대왕 명종'이환'이야기 (feat.을사사화)

by 포도남(포기는 빠르지만 계속 도전하는 남자) 2023.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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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명종 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나요? 저는 문정왕후의 치맛바람 속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했던 임금으로 생각되고, 임꺽정, 을사사화가 생각나네요.  역대급 짧은 치세를 했던 인종이 30세로 승하하면서 문정왕후가 그토록 바라던 자신의 아들, 경원대군 '이환'이 조선 13대 왕이 되니, 그가 바로 명종입니다.

 

앞서 조선 12대 왕 인종은 아래 블로그 주소를 첨부하니 참고 바랍니다. 

https://www.48lrc.com/entry/injongs-story

 

불운과 거식증의 아이콘 조선 12대왕 인종'이호'이야기

인종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나요? 저는 없습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몸이 허약하여 재위기간이 8개월 남짓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죠. 이러한 인종은 사실 몸이 허약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세

www.48lrc.com

 

을사사화 (1545)

 

 

우선 명종을 알아보기에 앞서 대윤소윤을 먼저 알아보아야 할 것 같네요. 대신들은 중종시절 대윤소윤이 나뉘어 파벌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대윤 인종의 외삼촌인 윤임이 함께한 세력이고, 소윤명종의 외삼촌인 윤원형이 함께한 세력인데요.

 

인종이 왕이 되고 대윤인 윤임이 승리하는 모양새였죠. 하지만 인종은 역대급 짧은 치세라고 말씀드렸죠? 8개월 후 인종이 승하하면서, 명종의 외삼촌인 윤원형이 권력을 잡게 됩니다. 당연히 윤원형의 누나였던 문정왕후는 말할 것도 없고요.

 

당시 명종은 12살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문정왕후는 명종을 뒤로하고 자신이 권력을 마구 휘두르기 시작합니다. 그의 동생 윤원형과 함께 말이죠. 하지만 대윤인 윤임 세력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습니다. 

 

윤임은 문정왕후의 동생인 윤원로를 걸고넘어지는데요. 인종이 승하한 것이 윤원로가 인종을 죽이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려 결국 인종을 죽게 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문정왕후는 자신의 동생을 유배 보내기 싫었겠죠. 그렇지만 윤임은 물론 다른 대신들까지 협공하여 문정왕후에게 상소를 올려대니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사실 대윤세력과 대신들은 윤원로를 탄핵한 것이지만 사실 문정왕후를 탄핵한 거나 마찬가지였던 것이죠. 이에 문정왕후는 어쩔 수 없이 동생인 윤원로를 유배토록 합니다. 대윤 측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가만히 있었던 문정왕후가 아니었습니다. 문정왕후는 밀지를 조작하여 자신의 동생인 윤원형과 소윤파 대신들에게 대윤을 칠 계획을 전달하는데요. 소윤의 핵심파 세력인 '이기'가 먼저 행동을 합니다. 명종에게 윤임을 탄핵시키라고 하는 것인데요. 그 이유로는 명종을 제거할 반역계획을 세웠다는 것이죠.

 

연출은 문정왕후가 하고 행동대장은 소윤파인 이기가 한 것인데요. 문정왕후가 오케이만 하는 상황에서 사림파들이 들고일어납니다. (여기서 잠깐! 대윤과 소윤은 사림파 세력이 아닌 훈구세력으로 보는 것이 맞습니다)

 

사림파는 밀지의 전달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한 것인데요. 사림은 원리원칙 주의자라고 말씀드렸죠? 게다가 외척이 득세하는 것도 매우 경계하였습니다. 하지만 문정왕후는 나와 명종은 가만히 당하라는 말이냐며, 대윤인 윤임과 대윤 세력을 유배 보내 버립니다. 

 

이들을 유배 보내는 것으로도 부족하였는지, 아예 씨를 말릴 생각을 하는데요. 윤임 세력이 인종이 승하하자 후계자로 명종이 아닌 다른 인물을 내세웠다고, 아예 사사하여 제거까지 해버립니다. 

 

이에 대윤 측과 관계가 있던 친인척을 국문하는 과정에서 정말로 명종이 아닌 다른 후계자를 옹립하려 한 것이 들통나게 되죠. 이렇게 되자 대윤 측과 관련된 인물의 친인척은 하루아침에 노비가 되거나 유배를 가게 됩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사화라는 것은 사림이 화를 당한 사건인데, 실제는 훈구파 외척세력끼리의 싸움으로 생각이 되시죠? 원리원칙 주의자였던 사림들은 이러한 문정왕후의 결정에 매우 탐탁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많은 반대파를 유배 보내거나 사사하여 죽인 문정왕후는 그간 자신의 의견에 반대를 피력했던 사림 세력을 제거할 명분이 생기는데..

 

양재역(당시 경기도 과천)에 벽서한장이 붙어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벽보에는 '문정왕후가 정권을 잡고 흔들어 나라가 망할 것 같다'라는 식의 벽보였는데요. 보통 이러한 벽보는 바로 찢어버리거나 불태우는 게 당시 관행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벽보를 굳이 가져와 문정왕후에게 바치는데요. 이 벽보를 본 문정왕후는 역적들의 죄를 가볍게 했기 때문에 이러한 벽보가 붙는 것이니 대윤과 관련된 사람을 더 강력히 처벌하라고 명하죠. 이때 윤임과 관련된 사림들이 대거 숙청을 당하게 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양재역 벽서사건이고 이를 통틀어 을사사화라고 합니다. 을사사화는 문정왕후가 사림파 제거를 위해 꾸민 자작극이라는 것이 중론입니다.

 

명종 (1545~1567)

드라마 옥중화 '명종'

이환은 중종과 문정왕후 윤씨 사이에서 늦둥이로 태어났습니다. 문정왕후가 35세라는 늦은 나이에 낳았기 때문이죠. 원래는 왕이 될수 없었으나, 이복형인 인종이 재위 8개월만에 승하하자 어떨결에 왕이 되었습니다.

 

12살이라는 어린나이에 즉위했기 때문에 정상적인 왕노릇을 할수 없어서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죠. 하지만 문정왕후와 그녀의 동생인 윤원형이 조정을 좌지우지 하고 있었기 때문에 명종은 꼭두각시 왕일 뿐 할 수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을사사화로 인해 어머니인 문정왕후와 윤원형을 견제할 세력 또한 사라지게 되죠.

 

어머니와 외삼촌의 횡포 속에 눈물로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문정왕후의 수렴청정기간 8년이 지나고 이제 명종이 친정을 하게 되지만 이후에도 문정왕후가 득세하여 제대로 자신의 정치를 하지 못합니다. 특히 문정왕후의 동생인 윤원형은 문정왕후를 뒷배에 놓고 부정축재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가 뇌물로 받은 재물이 왕실의 제정을 넘어선다는 이야기까지 있었으니 그들의 권세가 어떠했을지 아시겠죠?

 

심지어 친정을 하는 명종이 하는 것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문정왕후는 욕을하거나 뺨을 때리는 등 있을 수 없는 일도 서스름없이 하고 맙니다. 게다가, 명종이 자신의 정책을 실행하려고 하면, 문정왕후는 '주상이 누구 때문에 왕이되었는지 모르냐'며 꾸짖기도 했습니다.

왕의 권위도 땅에 떨어졌고 대신들의 부정부패는 날로 심해지는 가운데, 왜구들도 날뛰기 시작합니다.

 

1555년 왜구들이 전남지역을 약탈하여 쑥대밭을 만들어놓기도 하였습니다. 이를 을묘왜변이라고 합니다. 중종 때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임시로 세워둔 비변사 명종이 정식 관청으로 만들기도 하였죠. 날로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져갔습니다. 이때부터 대 도적의 시대가 되니, 대표적인 인물로 임꺽정이 이시기에 활동하게 됩니다. 

 

1565년 문정왕후가 죽자 나라는 정상적으로 되돌아 갔습니다. 국정을 농단하던 문정왕후의 동생인 윤원형과, 승려 보우는 유배를 가게 되었고 보우는 유배가는 과정에서 사망, 윤원형은 유배생활 중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되죠. 하지만 숱한 압박 속에 살았던 명종은 병에 걸려 결국 1567년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문정왕후 (1501~1565)

드라마 옥중화 '문정왕후'

문정왕후를 사림파가 싫어했다고 했죠? 그 이유 중 하나는 불교를 숭상했기 때문입니다. 조선 초기 유학자들에 의해 세워진 조선은 숭유억불(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제하는 정책)을 기치로 내세웠는데, 문정왕후는 열렬한 불교 신자였기 때문입니다. 

 

국토의 1/8을 불교에서 소유하고 있었고, 절에 소속된 승려를 제외하고 노비만 해도 약8만명이나 되는 등 국고가 줄줄 세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 이유는 승려와 노비는 납세의 의무와 군역의 의무를 지지않아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유학자들이 불교를 억압했던 것은 단지 유학에 반해서라고 보기도 하지만 이러한 경제적 이유도 동반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유도 있었습니다. 세조시대를 거치며 훈구세력이 득세하였고 백성들이 내야 할 세금은 늘어나고, 그로인해 백성들은 세금을 내지 않는 노비가 되거나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기 때문이죠.

 

승려 중에 보우라는 승려가 있었습니다. 불교 뿐만 아니라 유학에도 통달했다고 전해지는데요. 문정왕후도 유학과 불교, 두가지를 모두 익혔기 때문에 보우라는 승려를 궁으로 들여 불교중흥이라는 목표를 세우게 됩니다. 천상 유학자였던 성종이 금승법을 제정하여 아무나 승려가 되는 것을 금지하였는데요.

 

문정왕후는 도첩제를 시행하여 불법으로 승려가 되었던 사람들을 정식 승려로 인정해주었고, 전국에 300개의 절을 공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1565년, 문정왕후가 죽음으로써 이러한 불교중흥 정책은 오래가지 못하였죠. 

 

명종이야기 어떠셨나요? 사실 명종이야기이긴 하나, 대부분 을사사화와 문정왕후, 대윤과 소윤이야기가 대부분인데요. 사실 명종은 재위기간이 그리 짧지는 않았지만 문정왕후의 대리청정기간이 길었고, 자신의 뜻을 펼치려고하자 병에 걸려 사망한 안타까운 임금인데요. 이렇게 명종이 승하하고 명종의 후사가 없어서 중종의 방계 출신인 하성군이 조선 14대 임금'선조'가 됩니다.

 

지금까지 어머니의 치맛바람 속 조선 13대왕 명종'이환'이야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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