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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불운과 거식증의 아이콘 조선 12대왕 인종'이호'이야기

by 포도남(포기는 빠르지만 계속 도전하는 남자) 2023.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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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나요? 저는 없습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몸이 허약하여 재위기간이 8개월 남짓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죠. 이러한 인종은 사실 몸이 허약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세종, 성종과 같은 성군이 되지 않았을까요? 조선의 역대왕 중 불운과 거식증의 아이콘 조선 12대 왕 인종 '이호'이야기 시작합니다. 11대 왕 중종이야기는 아래에 첨부하였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www.48lrc.com/entry/jungjongs-story

 

조광조하고 싶은 거 다해! 조선 11대왕 중종'이역'이야기

여러분은 조선의 중종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저는 중종 하면 개혁 선비였던 조광조,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 치마바위정도가 생각나는데요. 그리고 조선의 왕중 살육을 많이 했던 왕하면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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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 (1515~1545)

드라마 여인천사 '인종'역

 

중종의 정실부인이었던 장경왕후는 아들을 낳게 되는데요. 이 아들이 바로 조선의 12대 왕 인종입니다. 하지만 아들을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장경왕후는 산후병으로 사망하고 맙니다. 그녀가 사망하기 전 남편인 중종에게 '억명'이라는 이름으로 지어달라고 하죠. 하지만 왕족이다 보니 외자로 지을 수밖에 없어서 '이억'이라고 짓게 됩니다. 이후 세자가 되면서 '이호'로 변경하게 되죠. 

 

이렇게 어머니를 떠나보낸 인종은 이유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으나, 중종에게 외면받아 3일 만에 궁 밖의 생활을 하게 됩니다. 게다가 한집에 오래 머무르게 하지 않고 이 집, 저 집에서 옮겨 다니며 커갔는데요. 

 

이렇게 인종은 어린 시절을 아버지로부터 떨어져 있게 되고, 어머니가 없이 쓸쓸하게 자라게 됩니다. 하지만 인종은 천재였을까요? 2년이 조금 넘어 천자문을 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중종은 이를 확인하려 인종을 궁으로 불러들였고, 천자문을 외워보라고 하자, 정말로 천자문을 외웠던 것이죠. 

 

이렇게 중종과 대신들을 놀라게 만든 인종은 세자수업을 제대로 받게 되는데요. 아무래도 천재인 만큼 영재교육을 진행하게 됩니다. 3살부터 세자전담 TF팀이 꾸려져 인종을 가르쳤고, 그리하여 6살 때 세자책봉까지 받게 됩니다. 이후 점차 인종은 철저히 금욕생활을 했습니다. 여자는 멀리하였고, 검소하기까지 했는데요. 이러한 행실을 보며 당시 대신들 사이에서는 '성군이 될 자질이 충분하다' 하여 모두를 기쁘게 만들었죠. 

 

하지만 궁 밖의 생활을 마치고 궁으로 들어온 인종을 달갑게 보지 않는 시선이 있었으니, 바로 문정왕후경빈 박 씨였습니다. 경빈 박 씨가 누구냐면요. 드라마 '여인천하'에서 "뭬야?"라고 했던 도지원 배우 아시나요? 그 역이 바로 경빈 박 씨 역할이었습니다. 

드라마 여인천하 '문정왕후'역

 

문정왕후는 인종을 정말 미워했습니다. 자신의 아들인 경원대군이 왕이 되었으면 했기 때문이죠. 어느 날 인종이 문정왕후에게 문안인사를 하러 가자, "내 아들 죽일 거지?"라는 말도 하였고, 심지어 인종이 잠들어있던 동궁에 불이 난적이 있는데 인종은 아내를 먼저 나가라고 한 뒤 자신은 그냥 여기서 죽겠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문정왕후가 불을 질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자신의 어머니가 아닌 계비였지만, 유교사회에서는 엄연히 계비도 어머니였기 때문에 자신이 죽어 마땅히 도리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한 것이죠.

 

하지만 중종이 울면서 나오라고 하자, 아버지를 현세에 남기고 자신이 죽는 것도 도리가 아니기에 그제야 불이 난 동궁을 빠져나왔습니다. 이러한 위기는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이죠. 물론 실록에 쓰여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비슷한 글이 실록에도 있는 것으로 보아 실록에 기록될 만큼 문정왕후는 인종을 싫어했던 것이죠. 

 

궁에서의 생활을 매우 험난했습니다. 세자의 음식을 맛보는 궁녀가 따로 있었는데, 음식을 맛본 궁녀가 식중독에 두 번이나 걸렸기 때문이죠. 이게 왜 문제가 되냐면요. 중종은 재위기간이 39년 동안 식중독이 한 번도 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왕이나 세자가 먹는 음식에 식중독이 생긴다는 것은 정말 큰일 나지 않을까요. 지금도 식중독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있을 만큼 위험한 병인데, 조선시대였으니 더 그랬겠죠? 누가 그랬을지 계산이 서는데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작서의 변

 

중종 재위 22년, 보통 세자가 머무는 곳을 동궁이라고 불렀는데, 이 동궁 근처에서 쥐 사체하나가 발견이 되었습니다. 아주 불길하게 불에 탄 모습이었고, 다리가 모두 잘려있었던 것이죠. 이 사건을 '작서의 변'이라고 합니다. 누군가 동궁에 있는 인종을 저주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중종은 세자인 인종을 탐탁지 않아 하던 경비 박 씨의 소행으로 생각하고 궁에서 내쫓게 되죠. 

 

가작인두의 변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6년 뒤 동궁 인근에서 나무로 만든 인형이 하나 발견되었는데, 인형에 쓰여있는 글씨는 바로 '임금과 세자, 문정왕후를 죽여라'라고 쓰여있던 것이죠. 이 일은 한충보가 한 일이라는 주석도 달았고요. 근데 자신이 한 행동에 자신의 이름을 쓴다? 누가 믿을 수 있을까요. 한충보를 조사하던 중 경빈 박 씨가 벌인 일이라는 게 밝혀지죠. 중종은 경빈 박 씨와 그의 아들 복성군을 사사하여 죽입니다. 이 사건을 '가작인두의 변'이라고 합니다. 말이 좀 어렵죠? 그런데 진짜 경빈 박 씨가 이런 일을 벌였을까요? 자신이 가장 먼저 오해를 받을 텐데 말입니다. 

 

인종 (1544~1545)

 

어느덧 중종의 병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나고 인종이 즉위하니 '이호'는 조선의 12대 왕이 됩니다. 하지만 재위 8개월이라는 역대급 짧은 치세를 남기게 되는데요. 중종이 승하하고 나서 인종은 효심이 지극하여 당시 상중에는 음식을 금하였는데, 이를 너무 잘 지켜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식사를 거의 먹지 않았던 것인데요. 심지어 상 중에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였으나, 세종 이후에는 이것도 완화하여 상 중에 고기를 먹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인종은 음식을 멀리하였고, 중종 승하하기 전 간병하느라 몸도 쇄약 했을뿐더러, 승하 후 상을 치르면서 병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이렇게 효심이 지극하여 금식을 너무한 인종은 급기야 거식증에 걸린 환자 같았는데요. 어느 날은 아예 병세가 심해져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였는데, 상궁이 입에 약을 넣었더니 상궁의 손가락을 깨물었고 약을 뱉어냈습니다. 아마도 어렸을 때 음식으로 인해 죽을뻔한 위기를 많이 넘겨서 음식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 아닐까요? 하지만 이렇게 건강이 악화됐는데도 불구하고 제사와 사신접대 등 정상적인 업무까지 수행하였습니다. 

 

야사에 따르면 인종이 승하하기 전 문정왕후에게 문안인사를 갔다고 합니다. 평소 같으면 문안인사를 받지 않는 문정왕후였으나, 그날은 너무 반가운 표정으로 떡을 주었는데, 인종은 이 떡을 받아먹고 병세가 급격하게 안 좋아졌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사실여부를 떠나서 문정왕후가 인종을 정말 싫어했던 것 같죠? 

 

결국 재위 8개월이 지나고 30세의 나이로 승하하는데, 승하 전 중종 때 기묘사화의 희생양이 된 조광조와 사림세력을 복권시켰으며, 중종 때 폐지된 현량과를 다시 실시하라고 말하며 끝내 숨을 거두게 됩니다. 

 

이렇게 짧은 치세를 남기고 떠난 인종 뒤에서 웃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녀가 바로 문정왕후입니다. 그 이유는 그녀의 아들 경원대군이 왕이 되기 때문이죠. 그녀의 아들 경원대군이 바로 조선의 13대 왕 명종입니다. 

 

만약 인종이 일찍 죽지 않았다면 세종, 성종을 잇는 성군이 되지 않았을까요? 

지금까지 역대급 짧은 치세를 했던 조선의 12대 왕 인종'이호'이야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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