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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1 vs 1000 경성 피스톨 '김상옥' (김상옥 의거 100주년)

by 포도남(포기는 빠르지만 계속 도전하는 남자) 2023.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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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1910년 조선이 일제에 의해 강제 병합이 되고, 무단통치를 이어가던 중 1919년, 3.1 운동에 의해 무단통치보다는 문화통치로 가닥을 잡은 일제였습니다.

하지만 말만 문화통치일 뿐 일본 경찰의 수는 늘었고, 조선에 대한 핍박은 더욱 심해졌죠.

1920년대에는 김원봉을 필두로 한 의열단,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 등 여러 무장 독립운동단체가 국외에서 활동을 한 시기였고, 특히 의열단은 일제입장에서도 상당한 골칫거리였습니다.

당시 일제가 내건 김원봉의 현상금만 지금 돈의 가치로 360억이었으니, 그 압박감은 이로 말할 수 없었겠죠?

그 의열단 소속으로, 경성에서 일제와 1대 1000 전투를 벌였던 인물, 오늘의 주인공 경성 피스톨 '김상옥'이 있었습니다.

 

김상옥

경성피스톨 김상옥


1889년 한성에서 태어난 김상옥은 유복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라,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며 성장했습니다. 나중에는 공장을 세워 경영하며, 많은 돈을 벌기도 하였죠. 이 공장은 향 후 독립운동의 기지가 되어, 독립운동자금을 공급하는 등 많은 역할을 하였습니다.

1919년 3.1 운동이 시작되고, 50여 명의 공장직원들과 함께 3.1 운동에 직접 참여하였으며, 태극기를 제작하여 나눠주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을 시작하게 되는데, 1919년 4월 혁신단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민족계몽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앞장서기도 하였지만, 계몽운동만으로는 민족의 독립운동이 어렵다고 판단하여, 무력에 의한 저항을 결심하게 됩니다.

당시 총독이었던 사이토 마코토를 암살하기 위한 작전을 실행하려 하였으나, 일제 경찰에 의해 발각이 되고, 결국 중국의 상하이로 망명을 하게 됩니다. 상하이로 망명한 김상옥은 이 시기, 의열단에 가입하여 활동하기 시작하게 되죠.

독립운동가 김상옥


1923년 1월, 사이토 마코토가 일본제국의회에 참여하기 위해 도쿄로 이동한다는 소식을 듣고, 김상옥은 상하이에서 농부로 변장하여 조선으로 입국하였는데요. 국내로 입국한 김상옥은 사이토의 거사를 노렸으나, 미리 알아챈 일제 경찰들로 인해 거사는 아쉽게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대신 김상옥은, 1월 12일 독립운동가 탄압의 본산이었던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는 거사 실행했습니다. 이에 종로경찰서에서는 의거를 실행한 사람에 대한 탐문을 실시했고, 김상옥이라는 것을 알아내어 그를 추적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밀정에 의해 김상옥의 근거지를 알아낸 일제경찰은, 우메다와 이마세 두 경부와 20여 명의 경찰로 김상옥의 은신처를 둘러싸고 체포작전을 실시하지만, 쌍권총을 든 김상옥은 숨어있던 집에서 용수철처럼 튀어져 나와 오히려 두 경부에게 총상을 입혀 사살하고, 기와지붕 위를 뛰어다니며, 총격전을 하는 등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영화와 같은 실력으로 도주하여 일제 경찰을 놀라게 합니다.

남산 위로 도주한 김상옥은 일제 경찰들을 따돌리려 신발을 거꾸로 신고, 스님으로 변장하여 다시 경성 시내로 들어올 수 있게 됩니다. 사실 김상옥의 목표는 종로경찰서가 아니었습니다. 일제의 본거지 바로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투척하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효제동에서 다음 거사를 계획하고 있었던 김상옥은, 동료에 의해 밀고를 당하게 되고, 1월 22일, 일제 경찰이 철두철미하게 준비하여 김상옥 소탕작전을 실시합니다.

이전에 당했던 것을 상기한 일제 경찰은, 경성 시내에 있는 모든 경찰 인원을 동원하여, 총 1천 명이나 되는 경찰병력을 준비하였고, 4중 포위를 실시하여 김상옥을 잡기 위한 준비를 하였습니다.

영화 '밀정' 일제 경찰의 추격장면

일제 경찰의 포위를 늦게 알아챈 김상옥은 일제 경찰의 포위 속에서 혼자서 쌍권총을 들며, 저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맙니다.

쌍권총을 들고, 지붕과 담벼락 사이를 오가며 시작된 전대미문의 1:1000 시가전이 3시간 동안 진행되었고, 김상옥은 일경 16명을 쓰러뜨리며, 도주하게 됩니다.

잠시 숨을 고르며 숨어있던 집의 이웃에게 "이보시오. 나에게 이불 한채만 내어 주시오. 그러면, 나는 그 이불을 방패 삼아 왜놈 한 놈이라도 더 저승길 동무로 데리고 가겠소"라고 하지만, 도둑으로 착각한 이웃은 "도둑이야"라고 소리치게 되고, 일경들은 김상옥의 위치를 알아차려, 추격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마침내 총알이 모두 소진되어 창고에 고립되는 상황이 오고야 맙니다.

그는 그의 손에 들려있던 권총 한 자루에 총알 한 발이 남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마침내 권총을 자신의 머리에 겨누었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이후 그의 몸에서는 총 11발의 총알이 발견되었는데, 스스로 본인에게 쏜 1발을 제외하면, 10발의 총상을 입은 채 저항한 사실에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화 '밀정'에서의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김상옥

 

끝맺는 말


영화 '밀정'의 첫 장면이 '김장옥'(김상옥 역)이 일경들에 의해 쫓기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영화를 보며, 당연히 과하게 연출된 장면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더 영화 같았던 김상옥 의사를 영화로 안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지금도 서울의 종각역 8번 출구에 김상옥 의사의 의거 터가 남아있지만, 출생 연도도 제대로 기록되어 있지 않고, 관리 또한 제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1945년 해방이 되고, 반민족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제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친일을 했던 사람들이 청산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친일 인사들이 고위 공무원으로 기용되는 등 안타까운 과거 또한 있었습니다.

게다가 현재 우리나라의 지폐 속 위인 중, 독립운동가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이 한탄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국가 없는 상황에서, 없어진 국가의 재건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가 제대로 조명되는 날이 오길 바라고, "나의 생사가 이번 거사에 달렸소. 만약 실패하면 내세에서 만납시다. 나는 자결하여 뜻을 지킬지언정 적의 포로가 되지는 않겠소"라는 김상옥의사의 말을 전하며, 2023년 김상옥 의사의 의거 100주년을 기념합니다.

김상옥 의거 100주년 기념우표 <내돈내산>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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