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와 백제
국사책 또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공부하다 보면, '광개토대왕은 신라의 내물마립간(훗날 내물왕)의 요청으로, 신라에 쳐들어온 왜를 토벌하였다'하였고, 그 역사적 사실로는 신라의 능에서 출토된 광개토대왕릉비와 같은 서체의 호우명그릇이 대표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광개토대왕은 신라를 왜로부터 구해줬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지금의 한반도처럼 단일민족의식이 있었을까?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었을까?
이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고구려와 백제의 사이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부여로부터 나온 고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하여 동명왕이 되었고, 그 고구려에서 나온 유민인 온조가 만든 나라가 백제이다. 굳이 따지자면, 고구려와 백제는 한 문화를 공유하던 한 나라의 후예인 것이다. 하지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던가'. 오히려, 두나라의 사이는 매우 좋지 못하였다.
특히, 백제의 근초고왕에 의해 광개토대왕의 할아버지인, 고국원왕이 전사하게 된다. 그리하여, 좋지 못했던 관계가 더욱 악화되었고, 이는 후대왕들에게 더욱더 백제를 적대시하는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백제와 왜
그렇다면, 필자는 왜의 신라침공에 대한 제목을 써놓고, '고구려와 백제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가'에 대한 대답으로는, 바로 왜의 신라침공은 백제가 사주했다고 보는 것이 맞기 때문이다.
광개토대왕 집권 6년, 백제의 성을 50여 개 탈환하였고, 당시 백제의 아신왕은 끝내 광개토대왕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게 된다.
백제는 국가 존폐의 위기감을 느끼고, 왜를 끌어들여 고구려와 우호관계를 맺고 있던, 신라를 공격하게 하는 계략을 세우게 된다. 당시 백제의 태자였던 전지는 왜로 가서 왜왕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왜가 신라를 침공할 때, 모든 물자는 백제에서 조달하고, 퇴각 시에는 가야에서 퇴로를 확보하며, 신라정벌에 성공하면 신라 땅을 고스란히 왜에게 넘기는 내용인 것이다.
그 후, 왜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치는 것이 백제의 계략이었다. 왜왕의 입장에서는 전혀 반대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 섬나라인 왜는 언제든 대륙진출의 야욕을 불태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기 400년, 왜는 백제의 무기와 식량을 지원받아, 신라를 침공하게 된다. 이에 신라의 내물마립간은 우호국이었던 고구려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광개토대왕은 고구려군 5만의 병력을 거느리고, 왜군을 소탕한다.
사실 두나라의 싸움은 아주 쉽게 끝이 났다. 많은 전장을 누비며 훈련된 고구려의 5만 보병과 개마무사는, 왜군의 활은 쏘아도 소용이 없었고, 창은 내질러도 빗겨나갔다.
패배한 왜군은 금관가야까지 후퇴하였으나, 고구려군은 이를 쫓아가 금관가야까지 공격하여 항복을 받아내었고, 그로 인해 지금의 '김해'인 금관가야에서 '고령'의 대가야로 가야의 주 세력이 이동하게 된다. 고구려군 5만에 의해 백제∙왜∙가야의 동맹군이 처참하게 무너지게 된다.
끝맺는 말
위의 내용에서 언급했듯, 단순히 신라가 우호국이기 때문에 도와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당시 후연의 공격을 받아 위기에 처해있었지만, 광개토대왕은 군대를 돌리지 않았다.
그만큼 할바아버지를 죽인 원수, 백제에게 원한이 컸던 것으로 필자는 생각한다. 광개토대왕 이후 왕인, 장수왕은 수도를 평양으로 천도하면서, 남하정책을 추진한 것도 같은 이유이다.
그렇다면, 광개토대왕은 '왜 백제와 신라, 가야까지 정벌하여, 한반도를 통일하지 않았을까?'에 대한 궁금증도 남는다.
아마도 통일 후 잔존세력의 부흥운동에 대한 우려를 했다고 생각한다. 당시 후연과의 영토전쟁으로 고구려입장에서는 상당한 압박을 느꼈다. 그렇기에 백제, 신라 모두 국가에 대한 정체성이 강했던 시기로 부흥운동이 일어나면, 더욱 골칫거리이기 때문에, 속국으로 남겨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글은 역사학자가 아닌 일반인의 리뷰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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