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임진왜란의 영웅 하면 누가 생각나시나요? 성웅 이순신, 권율 장균, 김시민 목사, 홍의장군 곽재우, 광해군 등등 생각나시죠? 하지만 명나라의 황제였던 만력제가 중국에서는 최고의 암군 중 1위와 2위를 다투는 사람인데, 조선이 임진왜란을 극복하는데 엄청난 역할을 했던 것 아시나요? 임진왜란 번외 편 명나라 13대 황제, 만력제이야기 시작합니다.
임진왜란은 제가 따로 포스팅했으니 참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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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이야기 (1592~1598)
기억나는 전쟁 중 우리나라를 가장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전쟁이 있나요? 대충 임진왜란, 병자호란, 6.25 등 생각나시죠? 이러한 전쟁 중 우리가 알고 있었음에도 침략을 당했던 전쟁이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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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력제 (1563~1620)
1563년, 융경제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황위에 오르고 형들이 일찍 요절하면서 만력제는 태자가 되었고, 1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황제로 즉위하게 됩니다. 어린 나이로 즉위하다 보니, 당시 재상이었던 '장거정'이 섭정을 하였고 만력제가 성군이 되기 위한 공부도 가르치게 되죠.
어린 나이지만 명나라를 잘 통치하기 위한 자질까지 보여주는 등 성군이 되어가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하지만 황제가 된 만력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공부뿐이었죠. 황제가 놀 수 있는 날은 아예 없었습니다.
장거정의 만력제에 대한 교육 방식은 황제를 가르치는 것보다는 그냥 어린아이를 교육하는 것과 같이 지나치게 엄하게 가르쳤습니다. 자신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만력제가 가르침을 잘 따라올 때는 칭찬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조금 틀리거나 어려워하면 엄청나게 화를 내며 폭언과 함께 분노하였습니다. 거의 학대 수준이었던 것이죠.
어머니인 황태후는 아들에게 환관을 붙여 혹시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일러바치라고 말하였고, 어린아이였던 만력제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있으면 그 환관은 황태후에게 일러바쳐 반성문을 작성하게 하는 등 굉장히 힘든 시기를 겪게 되죠. 덕분에 만력제는 유능한 인재로 성장하였습니다.
하지만 만력제가 장거정을 미워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엄청나게 존경하는 스승이었기 때문이었죠. 특히, 장거정이 섭정을 하던 시기를 만력중흥이라고 하여 명나라가 더 발전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장거정은 거침없는 개혁을 하였는데, 특히 1578년부터 1581년까지 전국적으로 토지 측량을 실시하여 세금 징수 현황을 파악하였으며, 여러 세금 항목들을 세량 항목 1개와 요역 항목 1개로 통합시키고 모두 은으로 납부하게 하는 일조편법을 실시하였죠.
게다가 군대를 개혁하여 이민족의 침입을 막는 등, 장거정은 정치를 굉장히 잘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거침없는 개혁으로 인해 반대파 또한 만들어지고 있었죠. 이러는 사이에도 만력제는 아침, 점심, 저녁에 끊임없이 울면서 공부만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만력제가 황제가 된 지 10년이 된 해에 과로로 장거정이 사망하게 됩니다. 20살이 된 만력제는 스승이 돌아갔다는 사실에 슬퍼했습니다. 주위에서도 장거정이 사망했지만 만력제가 성군으로 자랐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하였죠.
20살이 되었으니, 직접 통치하기 위해 친정을 하는데, 뜻밖의 상소가 올라오게 됩니다. 장거정이 깨끗한 이미지와 달리 엄청난 부정축재를 했다는 상소였죠. 장거정이 재물을 부정축재하여 모은 돈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고, 실제로 황실의 재산보다 더 많은 재산을 축재했습니다.
게다가 장거정 자신의 측근만 기용하는 인맥정치를 하는 등 반대파의 반발을 샀던 것이죠. 모두 진실을 알게 된 만력제는 엄청난 충격에 빠지게 됩니다. 20년 동안 믿고, 존경했던 스승이 이렇게 부패한 관료였다니.. 하면서 말이죠. 이후부터 만력제는 이렇게 마음을 먹습니다. '스승님이 했던 말을 반대로만 한다'였죠. 아예 황제 파업을 한 것입니다.
매일매일 올라오는 상소를 차곡차곡 쌓아 침대로 만들어 상소는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사치와 향락에 빠져 매일매일 연회를 열어 많은 여자들과 함께 했습니다. 심지어 그냥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내시들과 궁녀들을 몽둥이로 때려죽여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죠.
황실재산은 날이 갈수록 쌓였고, 명나라 국고는 날이 갈수록 비어갔습니다. 이렇게 사치, 향락, 태업을 한 것이 총 30년이나 되었습니다. 잘못 읽으신 거 아닙니다. 30년 맞습니다. 관리들은 30년 간 황제의 얼굴을 보지 못하여 어떻게 생겼는지 잊어버릴 지경이었고 관리를 임명하지 않아 고위관직 31명 중 24명이 공석인 채로 비어두었죠.
그렇게 사치와 향락, 태업이 계속되던 1592년 조선에서 임진왜란이 발발하였습니다. 의주까지 도망간 선조는 명나라에게 지원군을 요청하게 되죠. 명나라 관료들은 조선에 지원하는 것을 엄청나게 반대했습니다. 왜냐면 황제파업으로 인해 당장 명나라, 자신들도 먹고살기에 힘들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그때, 30년 간의 파업을 종료하고 그가 나타났습니다. 한쪽 다리가 짝다리에 등이 심하게 굽어있고, 풍채는 너무 뚱뚱해져 버린 만력제였죠.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조선에게 지원을 명합니다. 그 이유는 관리들이 반대했기 때문이었죠. 목적은 명확했습니다. '너네들이 얘기하는 것과 반대로만 할래'였죠.
그리하여 명나라의 조선 파병이 시작됩니다. 육군에서 연전연패하고 있던 조선에게 그저 빛.. 만력제가 거의 퍼주다시피 적극적으로 군대를 지원을 하였던 것이죠. 7년 간의 전쟁으로 조선은 국토가 황폐화되었고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서로 살아있는 사람을 도살하여 먹기까지 했었죠. 일본군의 칼과 조총에 죽은 조선인보다 굶어 죽는 조선인이 많을 정도였으니 말이죠.
심각한 상황에 놓인 조선은 다시 한번 만력제에게 곡물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게 됩니다. 하지만 황제파업으로 인해 명나라 또한 예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죠. 조선을 지원할 여력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관료들이 곡물지원을 반대하고 나섭니다. 여기서 그가 또 한 번 등장합니다. '어? 조선의 곡물지원을 반대해? 그럼 곡물을 주어야지' 라며 자신의 황실재정을 열어 쌀 9만 톤을 조선에 지원하게 됩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듯, 나라곳간은 비어 가는 와중에도 황실재정을 절대 쓰지 않던 만력제였는데, 황실재정까지 열어 조선을 지원했다는 사실에 고마우면서도, 왜 그랬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실제로 이때 만력제가 조선에 쌀을 지원하지 않았다면 지금 한반도의 깃발은 일장기가 되었을 거라는 이야기도 많죠.
이렇듯 명나라의 지원으로 인해 조선이라는 나라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조선의 사대부들은 재조지은(나라를 다시 만들어준 은혜)을 강조하였고, 만력제와 명에게 무한 충성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인조반정의 계기가 되었던 광해군의 중립외교도 어느정도는 이해가 되긴 합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여진족인 누르하치의 후금이 강성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또다시 황제파업에 들어간 만력제는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재위 48년 중 30년이란 세월 동안 황제파업을 한 만력제로 인해 명나라는 후금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청으로 국호가 바뀌는 치욕을 보게 되죠.
한편, 조선에서는 재조지은을 강조하며 후대까지 지속적으로 만력제에 대한 제사를 지내주고, 제사를 지낼 사당까지 지어주게 됩니다.
어떠셨나요? 실제로 만력제의 지원이 아니었다면 이순신장군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조선이라는 나라는 없어졌을지도 모릅니다. 중국에서는 수양제와 더불어 암군 중 1위와 2위를 다투는 인물이지만, 조선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요즘 말로 하면 그저 빛.. 아니었을까요.
지금까지 임진왜란의 또 다른 영웅? 명나라, 만력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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